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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67년 네덜란드는 맨해튼을 영국에 넘기고, 그 대신 호두만 한 열매가 자라는 5km짜리 섬을 가져갔다.
협상 테이블에서 네덜란드 대표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이겼다고 믿었다.
그 섬이 룬(Run), 인도네시아 반다 제도에 자리한 육두구 전용 산지였기 때문이다.
육두구는 오늘날 호박파이나 에그노그에 향을 더하는 향신료인데, 당시 유럽에서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
카레 가루 한 통의 원료를 독점하려고 뉴욕시 전체를 포기한 셈이다.
거기다 유럽인들은 육두구가 페스트, 즉 흑사병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인 재앙이었다.
그러니 육두구를 독점한다는 건 공포에 질린 대륙 전체에 '생존약'을 파는 사업권을 쥐는 일이었다.
네덜란드 협상단이 맨해튼을 포기한 건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
그 '합리적인 계산'이 결국 뉴욕을 영어권 도시로 만든 결정적 이유가 됐다.

서기 408년, 로마 원로원은 야만족 왕 앞에 후추 1.4톤을 쌓아두고 도시를 살려달라 빌었다.
그 왕이 알라리크(Alaric), 서고트족을 이끌고 로마를 포위한 게르만 부족장이다.
그는 몸값으로 금 5천 파운드, 은 3만 파운드를 요구하면서, 거기에 후추 3천 파운드를 덧붙였다.
강도가 금고를 털면서 "냉장고 속 후추도 전부 꺼내"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당시엔 완전히 합리적인 요구였다.
후추는 인도에서 홍해와 사막을 건너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유럽에 닿는 물건이었다.
운반 비용만으로도 이미 금값이었으니, 사실상 화폐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알라리크 같은 '야만족'조차 후추의 가치를 정확히 알 만큼, 후추는 이미 당시 세계의 공통 언어였다.
협상에도 불구하고 2년 뒤, 로마는 결국 함락된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은 아메리카를 찾고 있지 않았다.
그는 후추를 찾고 있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 항해를 떠난 건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무역로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길목을 장악해 향신료 수입을 틀어막았고, 스페인 왕실은 인도로 가는 새 항로가 절박했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서쪽 길을 뚫으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런데 카리브해에서 후추 대신 붉은 고추를 발견했다.
그는 이걸 굳이 'pimiento(피미엔토)', 스페인어로 '작은 후추'라고 불렀다.
후추를 찾았다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인도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불렀고, 그 이름은 500년이 넘은 지금도 그대로 쓰인다.
식당을 찾다 길을 잃었는데, 헤맨 그 골목이 알고 보니 새로운 대륙이었다.

천 년 동안 유럽인들은 계피가 어디서 오는지 몰랐다.
정확히는, 아랍 상인들이 모르게 만들었다.
그들이 퍼뜨린 이야기는 이랬다.
"시나몰로구스(cinnamologus)라는 거대한 새가 절벽 꼭대기에 계피 가지로 둥지를 짓는다. 그 둥지를 빼앗아야만 계피를 얻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기록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인데, 그조차 이 이야기를 그대로 자신의 책에 옮겨 적었다.
원가 100원짜리 제품을 '히말라야 설인이 만든다'고 우겨서 가격을 백 배 받아온 셈이다.
그 거짓말이 워낙 정교했으니, 천 년이 넘도록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진짜 산지는 스리랑카였다.
향신료의 가격은 운송비가 아니라 '신비'에 매겨진 값이었다.
그래서 16세기 포르투갈이 스리랑카 산지를 직접 찾아낸 순간, 계피 가격은 폭락했다.
비밀이 깨지자 마법도 함께 사라졌다.
오늘날 명품 브랜드들이 공장 원가를 끝내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혹시 이것과 같은 원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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