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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즈텍 시장에서 노예 한 명을 사려면 카카오 콩 100개가 필요했다.
그 콩이 바로 오늘 우리가 편의점에서 집어드는 초콜릿의 원료다.
기원전 1500년경 메소아메리카, 지금의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일대에서 카카오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했다.
음료이자 돈이었다.
오늘날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 부르면서 결제 수단으로도 쓰는 것과 같은 구조였다.
16세기 스페인 연대기 작가 오비에도가 남긴 기록을 보면 가격표가 구체적이다.
카카오 콩 30개면 토끼 한 마리, 100개면 노예 한 명이었다.
그리고 가짜 카카오 콩을 만든 위조범은 처형됐다.
오늘날로 치면 위조지폐를 찍어낸 사람에게 사형을 내린 셈이었다.
그런데 이 콩의 학명을 알면 한 번 더 놀란다.
Theobroma cacao, 라틴어로 '신의 음식'이라는 뜻이다.
신성한 음료이자 범용 화폐.
이 두 가지가 한 물건에 공존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마야와 아즈텍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귀하면 귀할수록 화폐가 되고, 그 화폐가 신에게서 왔다면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가졌다.

스페인은 카카오를 손에 넣자마자 곧장 비밀로 만들었다.
그것을 유럽 다른 왕실이 알게 된 건 80년이 지난 뒤였다.
1519년,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의 궁정에 처음 들어섰다.
황제는 황금 잔에 담긴 음료를 내밀었다.
당시 기록을 남긴 병사 베르날 디아스에 따르면, 몬테수마는 이 음료를 하루에 무려 50잔 마셨다.
그 음료가 달콤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칠리와 옥수수가루, 아치오테라는 붉은 향신료를 섞어 만든 쓰고 매운 액체였다.
오늘날로 치면 핫 소스에 가까운 음료에 카카오가 녹아든 형태였다.
스페인은 이 낯선 음료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리고 결국 약 80년간 유럽 다른 나라에 이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코카콜라가 원액 제조법을 130년째 금고에 잠가두는 것과 같은 무역 독점 전략이었다.
비밀이 깨진 건 1606년이었다.
이탈리아 상인 카를레티가 카카오를 토스카나로 가져가면서 유럽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카카오 음료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신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아는 네모난 초콜릿 바는 카카오 역사 5000년 중 마지막 200년의 발명품이다.
300년간 유럽에서도 초콜릿은 음료였다.
고체로 만들 생각을 아무도 못 한 게 아니라,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카카오 콩 안에는 지방과 건더기가 섞여 있어서, 그 상태로는 단단한 바 형태를 만들 수 없었다.
1828년, 네덜란드 화학자 콘라드 반 후텐이 이 문제를 풀었다.
그가 발명한 건 '코코아 프레스'라 불리는 압착기였다.
카카오 콩을 강하게 눌러 지방인 코코아 버터와 건더기인 코코아 파우더를 분리하는 기계였다.
그런데 이 분리 기술이 역설적으로 결합의 가능성을 열었다.
19년 뒤인 1847년, 영국 제과 회사 프라이 앤 선스가 분리해둔 코코아 버터를 코코아 파우더에 다시 섞어 틀에 굳혔다.
세계 최초의 고체 초콜릿 바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었다.
1875년 스위스의 다니엘 페터가 친구이자 사업가인 앙리 네슬레의 분유를 초콜릿에 섞는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게 부드럽고 달콤한 밀크 초콜릿이 완성됐고, 오늘 우리가 아는 초콜릿의 원형이 갖춰졌다.
캡슐 커피가 커피의 긴 역사 중 최근 30년의 발명이듯, 고체 초콜릿도 그렇다.
우리가 '원래부터 이런 것'이라 느끼는 것들이 사실 아주 최근의 발명인 경우가 많다.
초콜릿이 바로 그런 물건이다.

아즈텍에서 카카오 100개는 노예 한 명의 값이었다. 오늘날 카카오를 따는 아이의 하루 임금은 초콜릿 바 한 개 값에도 못 미친다.
현재 세계 카카오의 약 70%는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재배된다.
코트디부아르는 서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로, 공식 국명을 우리말로 옮기면 '상아 해안'이라는 뜻이다.
카카오의 원산지인 중남미가 아니라 이 두 나라가 생산의 중심이 된 건 19세기 유럽 식민 지배의 결과였다.
2020년 미국 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만 약 156만 명의 아동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한다.
카카오 농가의 평균 일당은 1달러 안팎이고, 그들이 길러낸 콩으로 만들어진 초콜릿 바 한 개는 마트에서 그 몇 배의 가격에 팔린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원두를 따는 농부가 한 잔 가격의 1%도 받지 못하는 구조와 정확히 같다.
한때 신의 음식이자 노예를 살 수 있는 화폐였던 카카오가, 정작 그것을 길러내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난한 노동이 됐다.
5000년 전 마야 사람들은 카카오 콩을 신의 선물로 받들었다.
그 신성한 콩이 오늘 서아프리카의 아이 손을 거쳐 우리 손에 닿는다.
그 긴 여정에서 초콜릿 포장지 뒤면에는 적혀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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