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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36년 7월, 한스 셀리에는 자신이 새로운 호르몬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대신 그는 그보다 훨씬 큰 것을 발견했다.
셀리에는 헝가리 태생의 내분비학자로, 당시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학 실험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분비학은 몸 안의 호르몬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의 목표는 난소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 호르몬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추출물을 주사해도 쥐들은 정확히 같은 증상을 보였다.
부신이 부풀고, 흉선이 쪼그라들고, 위에 궤양이 생겼다.
부신은 코르티솔을 만드는 기관이고, 흉선은 면역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심지어 대조군으로 식염수만 맞은 쥐도 똑같이 반응했다.
셀리에는 처음에 자신의 추출물이 오염됐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려는데, 어떤 재료를 넣어도 같은 맛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 '같은 맛'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셀리에가 결국 하게 된 일이다.
그가 찾던 호르몬은 끝내 없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몸은 어떤 자극에도 똑같이 반응한다."
위대한 발견은 실험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 안에 숨어 있었다.

우리가 매일 입에 올리는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셀리에가 평생 후회한 번역 실수에서 비롯됐다.
셀리에의 모국어는 헝가리어였다.
영어는 나중에 배웠고, 그래서 단어 선택에 허점이 있었다.
자신의 발견을 영어로 이름 붙여야 할 때, 그는 물리학 용어에서 단어를 빌렸다.
'stress'는 원래 공학과 물리학에서 쓰는 말이다.
다리에 무게가 실릴 때, 철재 기둥이 받는 '외부 압력'을 stress라고 부른다.
하지만 셀리에가 실제로 묘사하려던 것은 그 압력에 대한 몸 안쪽의 반응이었다.
그 반응을 영어로는 'strain'이라고 한다.
strain은 외부 힘이 가해졌을 때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형과 긴장을 뜻한다.
셀리에가 발견한 건 stress가 아니라 strain이었던 셈이다.
셀리에는 만년에 솔직하게 인정했다.
"내가 영어를 더 잘 알았더라면, 이걸 strain이라고 불렀을 거야."
하지만 그때는 이미 'stress'가 전 세계 의학과 일상어로 굳어진 후였다.
한국어로 '쿨하다'가 영어 cool과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로 정착한 것처럼, '스트레스'도 원래 의미에서 비껴난 채 전 세계에 퍼졌다.
그가 심은 씨앗은 맞았는데, 이름표가 잘못 붙은 채로 자란 것이다.
셀리에는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에 17번 올랐고, 17번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발견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이라는 이론으로 정리했다.
일반 적응 증후군이란, 몸이 위협에 반응하는 세 단계 과정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위험이 닥쳤을 때 우리 몸이 거치는 단계다.
1단계는 경고다.
위협이 감지되면 부신이 코르티솔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심박수가 오르고, 근육이 긴장하고, 뇌가 각성된다.
2단계는 저항이다.
몸이 위협에 적응하면서 버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내부 자원이 계속 소모된다.
3단계는 탈진이다.
자원이 고갈되면 면역이 무너지고 병이 생긴다.
셀리에는 이 세 단계가 감염이든, 화상이든, 과로든, 가난이든, 외로움이든 모두 똑같이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친구가 무엇을 물어도 "그건 다 스트레스 때문이야"라고 답한다면, 처음엔 깊어 보이다가 금방 아무것도 설명 못 하는 답처럼 느껴진다.
셀리에의 이론이 받은 인상이 꼭 그랬다.
그가 찾던 '만병의 통합 원리'는 동료들에겐 '만병의 핑계'로 보였다.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한 이론은 결국 어떤 것도 명쾌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따랐다.
그렇게 17번의 후보 지명은, 17번의 거절로 끝났다.
스트레스를 발견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팔았다.
2011년,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공중보건학자 마크 페티크루가 담배회사들의 내부 문서를 분석해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1958년부터 셀리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담배회사들로부터 비밀리에 연구비와 자문료를 받고 있었다.
그 대가로 셀리에는 담배회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주장을 내놓았다.
"폐암과 심장병의 진짜 원인은 담배가 아니라 스트레스입니다."
그는 이 내용을 논문으로 쓰고, 법정에서 직접 증언했다.
페티크루의 연구에서 더 구체적인 증거도 나왔다.
담배회사 변호인이 셀리에에게 "이렇게 써달라"며 초안을 보낸 편지가 실제로 발견됐다.
셀리에는 그 초안을 거의 그대로 논문에 담았다.
다이어트 전문가가 패스트푸드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살이 찌는 건 음식이 아니라 마음 관리 때문"이라고 주장해온 것과 같다.
그는 만년에 노벨상 수상을 위한 로비도 담배회사에 부탁했다.
코르티솔과 스트레스를 세상에 알린 그 이론이, 수백만 명을 담배 연기 속에 묶어두는 알리바이가 됐다.
셀리에는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도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매일 수억 번 발화된다.
그 단어를 쓸 때마다 우리는, 번역 실수를 하고, 위대한 발견을 하고, 그것을 팔아넘긴 한 사람의 이름을 무의식 중에 부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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