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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해를 만들었다.
무려 445일짜리 한 해였고, 로마인들은 이 해를 '혼돈의 해(annus confusionis)'라고 불렀다.
문제는 달력이었다.
당시 로마는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날짜를 세는 음력을 썼는데, 달은 태양보다 움직임이 복잡해서 매년 관리들이 손으로 날짜를 조정해야 했다.
결국 달력이 현실과 동떨어져버렸고, 수확은 가을인데 달력은 한여름을 가리키는 일이 벌어졌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집트는 태양을 기준으로 1년을 365일로 세는 태양력을 썼고, 카이사르는 이집트 천문학자 소시게네스를 불러 새 달력을 설계하게 했다.
소시게네스는 1년을 365일로 하되, 4년에 한 번 하루를 더하는 윤년을 제안했다.
하지만 새 달력을 시작하려면 먼저 쌓인 오차를 청산해야 했다.
카이사르의 방법은 과감했다.
기원전 46년 한 해를 445일로 늘려 그동안의 어긋남을 단숨에 메운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드러낸 것이 있다.
시간을 통제하는 자가 권력을 쥔다.
달력을 바꿀 수 있는 자는 당대에서 가장 힘 센 자뿐이다.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밤에 잠든 유럽인들은 다음날 아침 10월 15일 금요일을 맞았다.
열흘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율리우스력은 훌륭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1년을 365.25일로 계산했는데, 실제 지구의 공전 주기는 365.2422일이다.
차이는 겨우 11분 14초지만, 이것이 1,600년간 쌓이면 열흘이 된다.
문제는 부활절이었다.
기독교에서 부활절은 춘분 이후 첫 보름달 다음 첫 번째 일요일에 지내는데, 달력의 춘분 날짜가 실제 춘분과 열흘씩 어긋나니 계산 자체가 엉망이 됐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1582년 칙서 '인테르 그라비시마스(Inter gravissimas)'를 발표했다.
'가장 중대한 일들 중에서'라는 뜻의 이 칙서는 달력 개혁을 선언하는 동시에, 열흘을 즉시 삭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이다.
종교 행사 하나의 날짜를 맞추기 위해 인류 역사에서 열흘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열흘을 삭제할 수 있는 사람은 교황뿐이었다.
"우리의 11일을 돌려달라!(Give us our eleven days!)"
이 외침이 1752년 영국 거리를 가득 채웠다.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영국은 170년 동안 가톨릭 교황의 달력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결국 독자적으로 버티다가 1752년에야 그레고리력으로 전환했는데, 170년을 기다린 대가는 컸다.
이번엔 무려 11일을 날려야 했다.
9월 2일 수요일 다음날은 9월 14일 목요일이 됐다.
임금은 날짜 기준으로 계산됐으니 11일치 임금이 사라진 노동자들이 생겼다.
월세 계산이 뒤틀린 세입자, 생일이 증발한 아이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실제로 폭동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하지만 혼란은 분명 있었고,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는 당시 선거 풍자화에 "우리의 11일을 돌려달라"는 문구를 담아 이 소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달력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었다.
시간이 정치가 되는 순간이었다.

세계사 교과서에는 '1917년 10월 혁명'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그레고리력으로 보면 그날은 11월 7일이다.
러시아는 1918년까지 율리우스력을 고집했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날은 율리우스력으로 1917년 10월 25일이었는데,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11월 7일이었다.
러시아인들에게는 10월 혁명이 맞지만, 서유럽 사람들이 보면 11월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이름은 10월 혁명인데 날짜는 11월인 기묘한 상황이 탄생했다.
러시아가 1918년에 그레고리력으로 전환한 뒤에도 '10월 혁명'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오늘날에도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일부는 여전히 율리우스력으로 부활절을 계산한다.
같은 부활절을 서방 기독교와 다른 날에 지내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445일짜리 해를 만든 지 2,000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다른 달력으로 다른 날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오늘'이 언제인지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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