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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56년, 프랑스의 한 양조장이 도움을 청한 사람은 발효 전문가가 아니라 결정 모양이나 들여다보던 화학자였다.
북프랑스 산업도시 릴(Lille)의 사탕무 양조업자 비고(M. Bigot)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애써 담근 알코올이 번번이 시어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고는 인근 대학 학장을 찾아갔다.
그 학장이 바로 당시 막 서른셋을 넘긴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였다.
파스퇴르는 발효와는 전혀 무관하게, 결정체가 빛을 어떻게 꺾는지를 연구하는 결정학자였다.
동네 빵집이 빵이 자꾸 상한다며 수학 선생에게 SOS를 친 격이다.
하지만 파스퇴르는 거절하지 않았다.
현미경을 들고 양조장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현미경 아래에서 시큼한 발효통의 미생물은 둥글지 않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었다.
정상적으로 발효 중인 통에서는 작고 둥근 구형의 효모가 보였다.
그런데 술이 시어진 통을 들여다보니, 길쭉한 막대 모양의 미생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 막대 모양 미생물은 훗날 젖산균으로 밝혀진다.
젖산균은 알코올이 아니라 젖산을 만드는 균이어서, 그게 번식한 통은 시어질 수밖에 없다.
발효의 결과가 안에 있는 미생물의 종류에 달려 있다는 것, 파스퇴르가 처음 발견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시 과학계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웨덴의 화학자 베르첼리우스와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는 효모를 발효의 부산물, 즉 화학 반응이 끝난 뒤 남는 죽은 단백질 잔해로 보았다.
효모가 발효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발효가 일어나면서 생기는 쓰레기라는 것이었다.
파스퇴르는 1857년, 이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논문을 발표했다.
"발효는 살아 있는 미생물의 호흡과 생활의 결과다."
우유가 굳어가는 걸 보며 '그냥 화학 반응이겠지'라고 넘겼던 것이, 사실은 그 속에서 무수한 미생물이 잔치를 벌이고 있던 장면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당대 화학계를 지배하던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파스퇴르가 옳다는 사실을 무덤까지 가져가지 않았다.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단순한 화학자가 아니었다.
농업화학과 영양학을 개척하고 비료를 발명해,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인물이었다.
그런 리비히가 파스퇴르의 이론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1869년, 파스퇴르의 발표로부터 12년이 지났는데도 리비히는 공개적으로 반박 논문을 냈다.
신입 직원이 회의에서 정설을 뒤엎는 주장을 했는데, 사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임원이 "쟤는 어려서 그래"라며 끝까지 외면한 격이었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이 사실 진실의 절반씩을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파스퇴르는 살아 있는 미생물이 발효를 일으킨다는 것을 옳게 봤다.
리비히는 화학 반응 자체에도 무언가 있다는 직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무언가'가 밝혀진 건 1897년이었다.
독일 화학자 에두아르트 부흐너(Eduard Buchner)가 살아 있는 효모 세포를 완전히 분쇄해 즙액만 뽑아낸 뒤 거기에 당분을 넣었더니, 세포 없이도 발효가 일어났다.
세포 속에 든 물질, 즉 효소가 발효를 진행시킨 것이었다.
결국 파스퇴르도 맞고, 리비히의 직관도 반은 맞았다.
하지만 리비히는 자신의 절반조차 살아서 확인하지 못했고, 파스퇴르의 절반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과학의 권위가 때로는 진실보다 오래 버티는 순간이었다.

파스퇴르가 와인을 살리려 고안한 가열법은 결국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구하는 기술이 됐다.
1864년, 파스퇴르는 와인이 시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술을 60~70도로 잠깐 가열하면 잡균은 죽고, 와인의 풍미를 만드는 효모는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파스퇴라이제이션(pasteurization), 즉 저온살균법이다.
이름 자체가 파스퇴르에서 왔다.
처음 목적은 순전히 프랑스 와인 산업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술이 우유에 적용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생우유는 결핵, 디프테리아, 장티푸스 같은 병원균의 주요 전파 경로였다.
면역이 약한 아이들이 오염된 생우유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일상이었다.
저온살균 우유가 퍼지면서 19세기 후반 영아 사망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양조장 사장의 부탁으로 만든 작은 응급처방이, 결국 오늘날 슈퍼마켓 냉장고 전체와 전 세계 보건 시스템으로 번진 것이다.
파스퇴르는 자신이 와인통 하나를 고쳤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오늘 아침 냉장고에서 우유팩을 꺼냈다면, 그 유통기한 스티커는 결정 모양이나 들여다보던 한 화학자가 양조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날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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