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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0년 동안 전 세계 수학 교과서가 르장드르의 얼굴이라 가르쳐온 그림은, 사실 그와 이름만 같았던 프랑스 정치인의 것이었다.
우리 집 앨범에서 할아버지라고 알던 사진이 알고 보니 동네 정육점 아저씨였다는 사실을 200년 뒤에야 알게 된 상황이다.
2005년이 되어서야 미국 수학자 피터 두렌이 1820년 무렵 화가 줄리앙 부와이가 그린 풍자화 모음집에서 진짜 르장드르의 얼굴을 찾아냈다.
부와이는 당시 유명인들의 얼굴을 살짝 비틀어 그리는 캐리커처 화집을 냈는데, 그 안에 아드리앵마리 르장드르가 숨어 있었다.
두 세기 동안 교과서에 박혀 있던 얼굴은, 같은 성을 가진 프랑스 혁명기 정치인 루이 르장드르의 초상이었다.
정수론의 거대한 페이지를 채운 인물이 있었는데, 후대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그의 얼굴조차 다른 사람의 것으로 두 세기를 보냈다.
이 사실 하나가, 르장드르라는 이름이 역사에서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흐려져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출판한 쪽이 졌다.
르장드르가 1805년 종이 위에 인쇄한 공식은, 가우스가 머릿속에서 더 오래 갖고 있었다는 말 한마디에 주인이 바뀌었다.
최소제곱법은 쉽게 말해 이런 거다.
여러 관측값이 있을 때, 그 사이의 오차를 가장 적게 만드는 직선이나 곡선을 찾는 방법이다.
오늘날 날씨 예보부터 위성 위치 추적까지 쓰이는 기초 도구다.
르장드르는 1805년 출판한 '혜성 궤도 결정의 새로운 방법'에서 이 방법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
4년 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자신의 책에서 "나는 1795년부터 이 방법을 써왔다"고 적었다.
르장드르는 1809년과 1820년 두 차례 공개 편지를 써서 항변했지만, 학계는 결국 가우스 쪽으로 기울었다.
회사에서 내가 낸 기획안을 동료가 "나도 작년부터 비슷한 걸 생각했다"며 자기 공으로 만들어가는 상황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동료의 이름이 가우스였다는 것이다.
당대 수학계에서 가우스의 권위는 너무 컸고, 르장드르의 항변은 끝내 역사에 남지 못했다.
70대의 르장드르는, 자신의 평생 작업을 무용지물로 만든 청년의 논문에 분노 대신 찬사를 적어 보냈다.
타원적분은 원이나 타원처럼 구불구불한 곡선의 길이를 계산하려 할 때 나타나는 까다로운 수학 문제다.
단순한 원의 둘레라면 공식이 있지만, 타원이나 더 복잡한 곡선은 그게 안 된다.
르장드르는 1786년부터 40여 년간 이 문제와 씨름해 1825년에서 1828년 사이 세 권짜리 대작을 완성했다.
그런데 책이 나오자마자 노르웨이 청년 닐스 헨리크 아벨과 독일의 카를 야코비가 등장했다.
아벨은 26세에 요절한 천재였는데, 그는 르장드르와 전혀 다른 각도인 '역함수' 관점에서 같은 문제를 바라봤다.
그러자 타원적분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고, 르장드르의 방식은 하룻밤 사이에 낡은 것이 되었다.
평생 손으로 그려온 지도 위에 누군가 GPS를 올려놓으며 "이게 더 정확해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준 상황이다.
하지만 르장드르는 야코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당신과 아벨의 발견은 내 평생의 작업을 능가했습니다."
분노도 없고 변명도 없었다.
한 인생을 통째로 쏟은 결과물이, 가장 격렬한 비판자가 아니라 가장 정중한 찬사자에 의해 무너진 거다.
그리고 그 찬사자가 다름 아닌 르장드르 자신이었다.
르장드르를 가난하게 만든 것은 어려운 수식이 아니라, 그가 적지 않기로 결정한 단 한 명의 이름이었다.
1824년, 프랑스 학사원의 기하학 부문 선거가 열렸다.
프랑스 학사원은 당시 프랑스 최고 학자들이 모인 기관으로, 지금으로 치면 국가가 운영하는 최고 학술기관의 이사 선거 같은 자리였다.
정부는 자신들이 미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라고 압력을 넣었다.
르장드르는 거부했다.
그 직후 내무장관 코르비에르가 그의 연금을 끊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이미 재산 대부분을 잃은 르장드르에게 연금은 사실상 유일한 생활 수단이었다.
평생 다닌 회사에서 부장이 시킨 건배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퇴직금이 사라진 상황과 같다.
르장드르는 그렇게 80대를 가난 속에 보내다 1833년 1월 파리에서 사망했다.
르장드르 다항식, 르장드르 변환, 르장드르 기호.
이 이름들은 지금도 수학 교과서 곳곳에 살아 있다.
하지만 그 이름에 붙은 얼굴은 200년간 엉뚱한 사람의 것이었고, 그 이름이 세상에 내놓은 공식의 영예는 다른 이에게 갔고, 그 이름의 주인은 투표용지 한 장 때문에 가난하게 삶을 마쳤다.
르장드르는 제대로 기억된 적이 있기나 했을까.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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