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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질학의 아버지가 된 허턴은 실험실이 아니라 진흙투성이 밭에서 지구의 나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허턴은 에든버러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병원 대신 아버지의 낡은 농장을 택했다.
이후 14년간, 스코틀랜드 베릭셔의 흙을 매일 손으로 쥐며 살았다.
농부 허턴에게 가장 신기한 건 비가 온 뒤의 밭이었다.
빗물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흙을 깎아냈다.
깎인 흙은 개울로, 개울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흘러갔다.
그는 매일 이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이 속도라면, 이 땅이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6천 년은 어림도 없잖아."
그 직관이 훗날 인류의 시간 개념을 통째로 바꾸게 된다.
인류 과학사를 바꾼 발견이 실험실이 아닌 비에 젖은 농지에서 나왔다는 게 이야기의 첫 번째 반전이다.
그날 보트에서 내린 세 사람은 종이 한 장 두께의 경계 사이에서 1억 년의 공백을 보고 있었다.
1788년 6월, 허턴은 동료 수학자 존 플레이페어, 지질학자 제임스 홀과 함께 보트를 빌려 스코틀랜드 동해안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시카포인트(Siccar Point)라는 해안 절벽이었다.
겉으로 보면 그냥 바닷가 돌 절벽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뭔가 이상했다.
절벽 아랫부분의 지층은 거의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위의 지층은 수평으로 차분히 쌓여 있었다.
마치 책 두 페이지 사이에 전혀 다른 시대의 종이 수억 장이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부정합(unconformity)이다.
오래된 지층이 수직으로 뒤집히고, 깎이고, 그 위에 새 지층이 수평으로 덮이려면 수천만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경계선 하나가 6천 년이라는 숫자를 순식간에 무력화했다.
동행한 플레이페어는 나중에 이 순간을 기록했다.
"마음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어셔 대주교(James Ussher, 1650년에 성경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 지구가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에 창조됐다고 주장한 아일랜드 성공회 대주교)가 선포한 '6천 년 지구'가 절벽 하나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허턴이 쓴 단 한 문장이 1650년부터 138년간 굳어 있던 6천 년 지구를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1788년, 허턴은 「지구의 이론」(Theory of the Earth)이라는 논문을 에든버러 왕립학회에서 발표했다.
그 결론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시작의 흔적도, 끝의 기미도 발견하지 못한다."
(no vestige of a beginning, no prospect of an end)
당시 정설은 어셔 대주교의 '지구 나이 6천 년설'이었다.
이걸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 5천 년'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이 숫자는 신학적 진리였고, 의문을 품는 건 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허턴은 영리했다.
그는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시간을 다시 정의했다.
성경이 틀렸다고 공격한 게 아니었다.
다만 지구의 시작과 끝을 우리는 알 수 없다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6천 년은 설 자리를 잃었다.
같은 시대 거의 모든 학자가 성경 연대를 진리로 받드는 18세기 후반, 그는 신앙을 건드리지 않은 채 시간 자체를 다시 정의한 것이다.

허턴이 옳았다는 사실을 세상은, 그가 죽고 5년이 지나 친구의 번역본이 나온 뒤에야 깨달았다.
1795년, 허턴은 자신의 연구를 두 권짜리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문제는 이 책이 엄청나게 어려웠다는 것이다.
문장이 길고 구조가 복잡해, 동시대 학자들조차 끝까지 읽지 못했다.
1797년, 허턴이 세상을 떴다.
그의 이론은 묻힐 위기에 처했다.
그때 나선 사람이 절친한 친구 존 플레이페어(John Playfair, 에든버러 대학의 수학 교수)였다.
플레이페어는 허턴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화한 뒤, 5년에 걸쳐 다시 썼다.
1802년 출간된 「허턴 지구이론 해설」(Illustrations of the Huttonian Theory)은 명쾌한 문장으로 허턴의 이론을 세상에 처음 제대로 알렸다.
노벨상감 논문이 너무 난해해 동료가 쉽게 다시 써준 뒤에야 세상에 알려진 것과 비슷한 격이다.
이 해설서는 19세기 영국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의 손에 닿았다.
라이엘은 이 책을 읽고 동일과정설에 매료됐다.
동일과정설이란, 오늘 강물이 흙을 깎듯 수억 년 전에도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됐다는 생각이다.
라이엘의 책은 다시 찰스 다윈의 손에 들어갔고,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떠나면서 그 책을 챙겼다.
진화론은 충분한 시간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허턴의 진흙 밭에서 시작된 직관이 플레이페어의 손을 거쳐 다윈의 진화론으로 이어진 셈이다.
아직도 시카포인트 절벽은 그대로 서 있다.
그 1억 년의 경계선을 직접 만져봤다면, 허턴처럼 어지러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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