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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푸리에는 자신이 만들 그 어떤 수식보다 먼저, 인생에서 한 번의 운명적 우연을 통과해야 했어요.
1768년, 프랑스 오세르의 재단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에 부모를 잃었어요.
고아가 된 아이를 거둔 곳은 베네딕트 수도회 학교였고, 거기서 푸리에는 수학에 눈을 떴어요.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젊은 푸리에는 자코뱅파를 지지했어요.
자코뱅파란 혁명의 급진파, "왕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귀족도 부르주아도 모두 심판해야 한다"고 외친 집단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집권하자 프랑스는 공포정치 시대로 접어들었어요.
공포정치란 글자 그대로예요.
"혁명의 적"으로 지목된 사람은 재판 없이 단두대로 보내졌고, 1년도 안 되는 사이 1만 7천 명이 처형됐어요.
푸리에는 온건파로 돌아서 처형에 반대했다가 오히려 반혁명분자로 몰려 체포됐어요.
감옥에서 그는 자기 순서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1794년 7월, 공포정치의 설계자 로베스피에르가 쿠데타로 먼저 처형됐어요.
분위기가 뒤집혔고, 푸리에는 며칠 차이로 풀려났어요.
훗날 세상의 모든 진동을 분해하는 수학을 만든 사람이, 정작 자기 목숨은 순전한 우연의 진동에 맡겨야 했던 거예요.

푸리에가 푸리에 급수를 발견한 곳은 대학 연구실이 아니라, 늪지 배수 공사 보고서 사이의 짬이었어요.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을 계획하면서 군인만 데려간 게 아니에요.
학자 167명을 함께 배에 태웠는데, 수학자, 물리학자, 역사학자, 건축가까지 각 분야 전문가가 총동원됐어요.
푸리에도 그 명단에 있었어요.
이집트에서 그는 카이로에 세운 이집트 학사원의 서기를 맡았어요.
이집트 학사원이란 원정대가 현지에서 차린 연구 기관으로, 발굴 조사부터 고대 유물 기록까지 담당한 곳이에요.
로제타석이 발견된 건 바로 이 시기, 이 현장 근처에서였어요.
3년이 지나 프랑스로 돌아온 뒤, 나폴레옹은 그를 다시 붙잡았어요.
이번엔 그르노블 지방장관 자리였어요.
지방장관이 하는 일은 도로 건설, 늪지 배수, 민원 행정이었어요.
30대가 끝나도록 푸리에는 수학이 아닌 토목 행정을 하고 있었어요.
수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황제는 그를 행정관으로 쓰고 싶어 했어요.
그 짬짬이 시간에 그는 종이에 열(熱)의 이동을 계산하기 시작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듣는 모든 MP3 파일은, 한때 라그랑주가 "틀렸다"고 단언한 수학에 의존해요.
1807년, 푸리에는 열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다룬 논문을 프랑스 학사원에 제출했어요.
그 안에는 당시로선 충격적인 주장이 담겨 있었어요.
"어떤 함수든 사인과 코사인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심장 박동이든, 목소리든, 지진파든, 아무리 복잡하게 구불거리는 파형이라도 단순한 물결 여러 개를 겹치면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에요.
어떤 색이든 빨강, 파랑, 초록 세 가지 빛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심사위원석에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 두 명이 앉아 있었어요.
라그랑주는 고전역학 전체를 새로 정리한 사람이고, 라플라스는 태양계의 안정성을 수학으로 증명한 인물이에요.
라플라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라그랑주는 끝까지 "수학적으로 엄밀하지 않다"며 거부했어요.
논문은 출판이 막혔어요.
하지만 푸리에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어요.
그는 1822년에야 '열의 해석적 이론'이라는 책으로 이 연구를 세상에 내놓았어요.
기다린 시간이 15년이에요.
오늘날 이 이론은 디지털 음악 압축, MRI 촬영, Wi-Fi 신호 처리 모두의 기반이에요.
"수학적으로 엄밀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은 바로 그 이론이요.

기후변화라는 단어가 나오기 150년 전, 푸리에는 그 작동 원리를 이미 종이에 적어두었어요.
열을 연구하던 그는 어느 날 이상한 계산 결과를 마주쳤어요.
지구가 태양에서 받는 에너지만으로 계산하면 표면 온도는 지금보다 훨씬 낮아야 했어요.
그런데 실제 지구는 생명이 살 만큼 따뜻해요.
"대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푸리에의 추론은 이랬어요.
햇빛은 대기를 뚫고 지표면까지 들어오지만, 지구가 내보내는 열은 대기에 막혀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해요.
온실 유리가 낮에는 햇빛을 들이고 밤에는 열을 붙잡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200년 뒤 우리가 온실효과라고 부르는 개념의 최초 서술이에요.
1824년의 일이에요.
푸리에는 1830년, 자기 작업실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종이에 끄적인 가설 하나가, 200년 뒤 지구상 모든 정부의 최우선 정책 의제가 됐어요.
그는 그걸 알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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