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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75년 어느 밤, 한 천문학자가 토성을 보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통째라 믿었던 고리에 가느다란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전까지 천문학자들은 토성 고리를 단단한 원반 한 장으로 여겼다.
도넛을 옆에서 보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처럼, 당시 망원경 속 고리도 그냥 '하나의 띠'였다.
그런데 파리천문대의 굴절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조반니 카시니의 눈에, 고리 한가운데를 반듯이 가르는 검은 줄이 들어왔다.
이 검은 줄의 실제 폭은 약 4,800km다.
지구 지름의 절반 가까이 되는 빈 공간이 고리 한가운데 뚫려 있는 거다.
그리고 이 줄 하나가 당시의 상식을 뒤집는 첫 단서가 됐다.
고리는 하나의 원반이 아니었다.
크기가 서로 다른 입자들이 여러 층으로 나뉘어 고리처럼 보이는 거였고, 카시니의 발견이 그 최초의 실마리를 건넸다.
이 빈 공간은 오늘날 '카시니 간극'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루이 14세는 천문학자를 외교 협상으로 수입했다.
한번 들어온 카시니는 다시는 이탈리아 땅을 밟지 못했다.
카시니는 볼로냐대학에서 천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교황청의 요청으로 정밀 측량 작업을 도맡을 만큼 당대 이탈리아 과학계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1669년, 루이 14세가 제안을 들고 왔다.
유럽 최초의 국립 천문대로 짓고 있는 파리천문대의 초대 대장 자리와 거액의 연금이었다.
오늘로 치면 국가가 해외 최고 연구자를 파격 조건으로 영입해 새 연구소를 통째로 맡기는 것과 같다.
카시니는 결국 프랑스로 건너갔고, 이름마저 장도미니크 카시니로 바꿨다.
파리천문대는 1667년 착공해 유럽에서 처음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천문대로 문을 열었다.
카시니는 평생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루이 14세가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더 놀라운 건 그 이후다.
천문대장 자리를 아들이 물려받고, 손자도, 증손자도 이어받았다.
4대 세습이라는 진풍경이 파리천문대에서 벌어진 거다.

카시니가 한 일은 별을 더 자세히 본 것이 아니라, 같은 별을 두 사람이 동시에 본 것이었다.
1672년, 카시니는 동료 천문학자 장 리셰를 지구 반대편으로 보냈다.
목적지는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의 카옌, 적도 부근의 열대 항구 도시다.
카시니는 파리에 남았고, 리셰는 카옌에서 같은 날 밤 같은 시각에 화성을 올려다봤다.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같은 화성이라도 서울에서 보는 방향과 시드니에서 보는 방향이 미세하게 다른 것처럼, 파리와 카옌에서 본 화성의 하늘 속 위치에도 아주 작은 차이가 생긴다.
이 차이, 즉 시차를 이용하면 삼각법으로 지구-화성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거기에 케플러 법칙을 적용해 태양까지의 거리도 추정했다.
케플러 법칙은 행성이 태양을 도는 속도와 거리의 비율을 기술한 규칙이다.
카시니의 계산 결과는 약 1억 4천만km로, 실제 값인 1억 5천만km와 오차가 불과 7%였다.
인류가 처음으로 태양계의 실제 크기를 숫자로 손에 쥔 순간이었다.
더 좋은 망원경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더 오래 관측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두 사람이 충분히 멀리 떨어져서 동시에 바라봤을 뿐이었다.

하늘의 검은 틈을 가장 먼저 본 눈이, 자기 발 앞의 과학혁명만은 끝내 보지 않으려 했다.
1676년, 카시니의 동료 올레 뢰머가 놀라운 계산을 들고 왔다.
목성의 위성 이오가 목성 뒤에 가려지는 현상, 즉 식(食)이 일어나는 시각이 지구와 목성이 가까울 때와 멀 때 미세하게 달랐다.
식(食)은 한 천체가 다른 천체 뒤에 가려 잠시 사라지는 천문 현상이다.
뢰머는 이 시각 차이를, 빛이 더 긴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설명했다.
그래서 "빛의 속도는 유한하다", 즉 빛도 시간이 걸려 움직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뢰머의 계산 재료가 된 이오의 식 기록은, 바로 카시니가 수년에 걸쳐 쌓아온 관측 데이터였다.
자기 데이터로 동료가 새 이론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카시니는 이 결론을 평생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턴의 만유인력도, 케플러의 타원 궤도도 마찬가지로 거부했다.
카시니는 행성이 달걀형 곡선을 그린다는 자신만의 '카시니 난형선' 이론을 끝까지 고집했다.
난형선은 타원보다 한쪽이 더 뭉툭한 달걀 모양의 곡선으로, 결국 틀린 주장이었다.
1712년, 카시니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토성 고리의 균열을 인류 최초로 발견한 눈이, 정작 자신이 살던 시대의 균열은 보지 않으려 했다.
지금 내가 쌓고 있는 데이터는, 내가 원하는 결론만 가리키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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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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