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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살은 가장 어두운 계절이 아니라 가장 밝은 계절에 정점을 찍는다.
에밀 뒤르켐이 1897년 『자살론』에서 처음 세상에 내놓은 통계가 이렇게 말한다.
그의 데이터는 명확했다.
프랑스 자살 통계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은 달은 12월이나 1월이 아니라 6월이었다.
한 세기가 지나도 이 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미국, 유럽, 한국 모두 봄에 자살률이 최고치를 기록한다는 사실은 현대 정신의학이 반복해서 확인했다.
그러면 왜 겨울이 아니라 봄인가.
겨우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사람을 생각해보자.
절망은 그대로인데 봄볕이 들면서 몸을 움직일 힘만 돌아온다.
그 에너지가 가장 극단적인 결심으로 향한다.
절망이 방아쇠를 당기는 게 아니다. 에너지가 방아쇠를 당긴다.
뒤르켐은 이 패턴에서 자살이 순전히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날씨, 계절, 사회 구조가 함께 만드는 현상이라는 거다.
그가 『자살론』을 쓴 건 사람들이 왜 죽는지가 아니라, 왜 특정 달에 더 많이 죽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130년 전, 그 질문 하나가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1984년, 한 정신과 의사가 학회에서 발표를 시작하자 청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노먼 로젠탈은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소속 의사였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신을 연구하고 있었다.
가을이 오면 무기력해지고, 겨울 내내 집중이 안 되다가, 봄이 오면 다시 멀쩡해지는 패턴이 매년 반복됐다.
로젠탈은 혼자 속으로 물었다. "이게 심약한 성격 탓일까, 아니면 몸 어딘가가 계절에 반응하는 걸까?"
그가 찾아낸 답은 세로토닌이었다.
세로토닌은 뇌가 기분, 의욕, 집중력을 조절하는 데 쓰는 물질인데, 햇빛이 망막을 자극해야 만들어진다.
충전기 없이 방치된 휴대폰처럼, 햇빛이 없으면 뇌는 이 물질을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어두워지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된다.
겨울에 해가 짧아지면 세로토닌은 줄고 멜라토닌은 늘어나, 내내 졸리고 기운이 없다.
이게 뇌 화학 수준의 현상이라는 거다.
로젠탈은 이 상태를 계절성 정동장애(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이름 붙였다.
쉽게 말하면 '햇빛 부족이 만드는 우울증'이다.
1984년 비웃음을 받은 그 이론은 10년 뒤 정신의학 교과서에 실렸다.
지금 북유럽 국가들이 겨울마다 빛 치료 램프를 처방하는 배경이 바로 로젠탈이다.
흐린 날의 기분 저하는 심약한 성격 탓이 아니다.
로젠탈이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 삼아 증명해낸 결론이다.

1816년 6월, 스위스 제네바 호수에는 비가 멈추지 않았다.
7월에 눈이 내렸다.
역사는 이 해를 '여름이 없는 해'(Year Without a Summer)라고 부른다.
원인은 지구 반대편이었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고, 그 화산재가 대기권 위로 치솟아 1년 동안 지구 전체의 태양빛을 가렸다.
유럽 전역에서 흉년이 들었고, 굶어 죽은 사람이 수십만 명에 달했다.
그 어둠 속에 19살의 메리 셸리가 있었다.
제네바 호수의 별장에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촛불 앞에 앉아, 그녀는 과학자가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썼다.
그게 『프랑켄슈타인』이다. 근대 SF 호러의 원형으로 불리는 바로 그 소설이다.
같은 해 유럽 전역에서 자살과 우울증 기록이 폭증했다.
날씨는 개인의 기분만 바꾼 게 아니었다.
문화 전체의 분위기를 어둡게 물들였다.
단 하나의 화산이 인류 전체의 심리를 1년간 바꿔놓았고, 그 어둠이 문학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소설을 낳았다.
여름이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프랑켄슈타인도 없었을지 모른다.

FBI가 1965년부터 집계한 미국 범죄 통계에서 살인은 항상 7월과 8월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
우연이 아니다.
아이오와 주립대 사회심리학자 크레이그 앤더슨은 수십 년간 쌓인 범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의 결론은 단순하다.
평균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폭력 범죄율이 약 4% 증가한다.
이유는 뇌에 있다.
전전두엽은 우리가 충동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해주는 부위인데, 체온이 오르면 이 영역의 기능이 약해진다.
오늘날로 치면, 스마트폰이 과열됐을 때 앱이 멈추는 것과 같다.
뇌가 과열되면 '잠깐, 생각해봐'라는 브레이크가 먼저 꺼진다.
봄 햇살이 자살을 끌어올린다면, 여름 폭염은 살인을 끌어올린다.
같은 햇빛이 계절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를 만든다.
겨울 가족 모임이 조용하고 여름 골목이 위험한 건, 성격 차이가 아니라 기온 차이다.
뒤르켐에서 로젠탈, 메리 셸리, 앤더슨까지 100년의 연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는 날씨를 그냥 배경으로 여기지만, 어쩌면 날씨가 무대 위의 주인공이고, 우리가 배경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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