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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88년 어느 아침, 알프레드 노벨은 조간신문에서 자신의 부고를 발견했다.
호칭은 "죽음의 상인"이었다.
실제로 죽은 것은 알프레드가 아니라 형 루드비그였다.
루드비그가 프랑스에서 사망하자 한 프랑스 신문이 형제를 혼동해 알프레드의 부고를 실어버렸다.
헤드라인은 이랬다. "Le marchand de la mort est mort." 죽음의 상인이 죽었다.
오늘날로 치면 자기 이름을 검색했더니 "이 사람 때문에 수천 명이 죽었다"는 글이 가장 위에 뜬 상황이다.
알프레드는 평생 다이나마이트가 광산을 뚫고 터널을 뚫고 철도를 놓는 데 쓰인다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다.
그 신문 한 장이 알프레드의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내가 죽고 나면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
그 질문이 결국 노벨상을 만들었다.

동생을 죽인 것은 그 자신이 만들던 액체였다.
그런데 알프레드는 실험을 멈추는 대신 그것을 길들이기로 결심했다.
1864년, 스톡홀름 인근 헬레네보리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알프레드가 연구하던 니트로글리세린이 터진 것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은 당시 최강의 폭발 물질이었지만, 조금만 흔들려도 터지는 극도로 불안정한 액체였다.
그 폭발로 동생 에밀 노벨을 포함한 5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연구실 문을 닫지 않았다.
가족의 죽음이 오히려 "안전한 폭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으로 굳어졌다.
3년을 더 연구한 끝에 1867년 해답을 찾았다.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키면 충격을 줘도 폭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규조토는 미세한 구멍이 가득한 특수한 흙으로, 스펀지처럼 위험한 액체를 품어 안정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다이나마이트다.
이름은 그리스어 dynamis, '힘'에서 따왔다.
동생을 잃은 비극이 역설적으로 더 강력하고 더 안전한, 그래서 더 많이 퍼진 폭약을 세상에 내놓은 셈이었다.

노벨은 전쟁을 증오한다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쓰는 사이에도 그의 공장은 군대에 폭약을 납품하고 있었다.
알프레드 노벨은 평생 355개의 특허를 보유했고, 20개국에 90개가 넘는 공장을 세웠다.
다이나마이트는 수에즈 운하 확장, 알프스 터널 굴착, 미국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쓰였다.
그것까지는 그가 꿈꾸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같은 폭약이 보불전쟁(1870~1871년,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싸운 전쟁)에서 군용으로 쓰였고, 식민지 진압에도 동원됐다.
알프레드의 오랜 친구 베르타 폰 주트너는 오스트리아의 평화운동가로, 훗날 1905년 노벨평화상을 받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알프레드는 이렇게 썼다. "내 공장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어. 양쪽이 1초 만에 서로를 전멸시킬 수 있다면 어떤 국가도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거야."
공포의 균형으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논리, 냉전 시대 핵 억지력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공장은 계속 납품을 했고, 폭약은 계속 사람을 죽였다.

노벨이 죽자 가족들은 슬퍼하기 전에 변호사를 불렀다.
그가 남긴 종이 한 장이 가문의 재산 전부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1895년, 알프레드는 파리의 스웨덴-노르웨이 클럽에서 유언장을 직접 손으로 썼다.
변호사도 없었고 공증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그냥 종이 한 장에 자기 뜻을 적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전 재산의 94퍼센트, 약 3,100만 크로나를 물리·화학·생리의학·문학·평화 다섯 분야 수상자에게 매년 나눠주는 기금으로 남긴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가치로 약 2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돈이었다.
1896년 알프레드가 사망하자 조카들은 즉시 유언장 무효 소송을 걸었다.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조차 "국부 유출"이라며 공개 반대했다.
법적 다툼은 4년이나 이어졌고, 결국 1901년에야 첫 번째 노벨상이 수여됐다.
알프레드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직계 자손이 없었다는 사실이, 그 결정을 버텨낼 수 있게 해줬다.
싸울 상속자가 있었다면 그 유언장은 아마 무효가 됐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상인"이라는 부고를 읽은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방식은 결국 그것이었다.
폭약 특허 355개도, 20개국 공장도 아니라, 매년 인류의 지식과 평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
지금 누군가 노벨상을 받을 때마다, 1888년 아침 그 신문을 손에 쥐고 있던 남자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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