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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윌슨이 평생 개미를 연구한 건 개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새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1936년, 앨라배마 시골에서 일곱 살 윌슨은 낚시를 하다 사고를 당했어요.
물고기 가시가 오른쪽 눈을 찌른 거예요.
그래서 그날 이후, 오른쪽 시력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요.
멀리 날아가는 새는 이제 흐릿한 형체로만 보였어요.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고, 땅바닥에서 개미 떼를 발견했어요.
마치 안경이 없어 칠판이 안 보이는 학생이, 어쩔 수 없이 책상 위 노트만 들여다보다 그림에 빠지는 것처럼요.
핸디캡이 방향을 바꿨고, 그 방향이 평생을 결정했어요.
결국 에드워드 O. 윌슨은 20세기 최고의 개미학자(myrmecologist)가 됐어요.
개미 종을 분류하고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뜻이에요.
평생 450종 이상의 개미를 새로 분류해낸 사람으로요.

현대 과학사에서 학회 단상 위 학자가 물벼락을 맞은 사건은 단 한 번뿐이에요.
그리고 그 대상은, 바깥의 적이 아니라 같은 학교 동료들이 먼저 낙인을 찍은 사람이었어요.
1975년, 윌슨은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을 출간했어요.
동물의 사회 행동을 유전자로 설명한 책이에요.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사회 행동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썼어요.
그러자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가 결정하느냐"는 논쟁이 폭발했어요.
가장 격렬하게 공격한 건 바깥의 적이 아니었어요.
같은 하버드 동료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 나서서 윌슨을 나치 우생학, 인종차별주의와 비교했어요.
직장 동료들이 갑자기 일어나 "넌 인종차별주의자야"라고 외치는 상황이요.
그게 하버드라는 공간에서 실제로 벌어진 거예요.
그리고 1978년, 미국과학진흥회(AAAS) 학회에서 사건이 터졌어요.
단상에 오른 윌슨의 머리 위로 시위대가 물병을 쏟아부었어요.
"윌슨, 넌 완전히 틀렸다(Wilson, you're all wet)!"
'all wet'은 영어로 "완전히 틀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흠뻑 젖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물벼락과 말벼락을 동시에 날린 거예요.
하지만 윌슨은 물을 닦으며 강연을 이어갔어요.

우리가 오늘 '생물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건, 1986년 한 학자가 그 단어를 학계 밖으로 끌어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에요.
그 전까지 학자들은 'biological diversity'라는 긴 표현을 썼어요.
그런데 1986년, 윌슨은 워싱턴 D.C. 국립과학아카데미에서 'BioDiversity 포럼'을 주도했어요.
그리고 2년 뒤, 그 논의를 담은 단행본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을 세상에 내놓았어요.
이 책 한 권이 신조어를 세계어로 만들었어요.
환경 협약, 교과서, 뉴스 기사 어디서나 이 단어 없이 자연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됐어요.
반전은 타이밍이에요.
사회생물학으로 "인간을 유전자 기계로 봤다"는 비난을 받던 학자가, 딱 10년 만에 환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다시 태어난 거예요.
비판하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윌슨의 언어로 자연을 이야기하게 됐어요.
92세의 윌슨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딱 한 문장이었어요.
"지구의 절반을 돌려달라."
2016년, 여든일곱의 윌슨은 『지구의 절반(Half-Earth)』을 출간했어요.
주장은 단순했어요.
지구 육지와 바다의 50%를 인간이 손대지 않는 보호구역으로 설정해야, 지금 진행 중인 6번째 대멸종을 막을 수 있다는 거예요.
대멸종이란, 지구 생물 종의 대부분이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사라지는 사건이에요.
공룡이 사라진 게 5번째 대멸종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인간이 초래하는 6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게 윌슨의 경고였어요.
평생 돈을 모으던 사람이 죽기 전 전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요.
윌슨은 그걸 행성 단위로 요구한 거예요.
그리고 92세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Half-Earth Project' 재단을 직접 이끌었어요.
인간 본성을 유전자로 환원시켰다고 비난받던 학자가, 결국 인류에게 행성의 절반을 자연에 내놓으라 요구하며 생을 마쳤어요.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인간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그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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