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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15년 봄, 다비트 힐베르트는 자신이 직접 초청한 천재 수학자가 강의실 문 앞에서 막혔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힐베르트는 당시 수학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었어요.
괴팅겐 대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직접 제시하고, 전 세계 연구자를 불러 모으던 사람이었거든요.
그가 직접 초청한 사람은 에미 뇌터였어요.
하지만 뇌터는 강단에 설 수가 없었어요.
이유는 단 하나, 여성이라는 것이었어요.
당시 독일 대학에는 여성에게 하빌리타치온을 허락하지 않는 규정이 있었어요.
하빌리타치온은 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을 공식으로 인정받는 심사 절차예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가 당신을 스카우트해 놓고 인사부가 "여자라서 사무실 출입증은 못 드립니다"라고 통보하는 거예요.
힐베르트는 교수회의에서 이렇게 분노했어요.
"우리는 대학이지 목욕탕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수회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에너지가 왜 우주에서 사라지지 않는지, 그 한 줄짜리 의문에 답한 사람이 뇌터였어요.
물리 시간에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법칙을 배웠을 거예요.
그런데 왜 보존되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죠.
1918년, 뇌터는 그 이유를 수학적으로 증명했어요.
그게 바로 뇌터의 정리예요.
핵심은 이거예요: 자연의 모든 보존법칙은 어떤 대칭과 정확히 1:1로 대응한다는 것이에요.
대칭이란, 어떤 것을 바꿔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오늘 실험하든 내일 실험하든 물리법칙이 똑같다면, 그건 시간 대칭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 대칭이 바로 에너지 보존을 낳는다고 뇌터는 증명했어요.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서울에서 실험하든 뉴욕에서 실험하든 물리법칙이 같다면, 그게 운동량 보존이에요.
대칭 하나가 보존법칙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쓰는 일반상대성이론도,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도 모두 이 정리 위에 서 있어요.
뇌터의 정리는 현대 물리학의 문법이에요.

같은 교실, 같은 칠판, 같은 강의 노트였어요.
다만 4년 동안 게시판에 붙은 강사 이름은 "힐베르트"였어요.
실제로 강의를 한 사람은 뇌터였는데도요.
1915년부터 1919년까지, 괴팅겐 대학 게시판에는 "힐베르트 교수의 강의"라는 공지가 붙었어요.
하빌리타치온이 거부된 뇌터는 자기 이름으로는 강의를 열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힐베르트의 이름을 빌려 강단에 선 거예요.
회사의 핵심 알고리즘을 내가 짰는데, 발표와 특허는 상사 이름으로 나가는 상황이에요.
그것도 월급 없이요.
실제로 뇌터의 보수는 0원이었어요.
1919년, 드디어 하빌리타치온이 인정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무급이었어요.
1923년에 가서야 형식뿐인 강사료가 책정됐고, 정교수직은 끝내 받지 못했어요.

1935년 4월 14일, 펜실베이니아의 한 병원에서 53세 수학자가 수술 합병증으로 죽었어요.
그날 이후 그녀의 정리는 모든 물리학 교과서 첫 장에 놓였어요.
뇌터는 살아서 그걸 보지 못했어요.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유대인 공직 추방법이 시행됐어요.
유대인을 모든 국가 기관 직위에서 몰아내는 법이었어요.
괴팅겐 대학은 뇌터에게 강사 자격마저 박탈했어요.
결국 뇌터는 미국으로 망명했어요.
필라델피아 근교의 여자 대학인 브린모어 칼리지에 자리를 얻었어요.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반도 지나지 않아 난소 종양 수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며칠 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뉴욕타임스에 추모사를 실었어요.
"여성 고등교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창조적 수학 천재."
평생 그녀에게 인색했던 세상이,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 이름을 제대로 불렀어요.
뇌터의 정리를 모르는 물리학자는 없어요.
하지만 그 정리를 만든 사람이 강의실 출입도 막혔던 여성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 불균형이 아직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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