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세기 수학의 언어 자체를 다시 쓴 이 남자는, 마흔셋이 될 때까지 어느 나라의 국민도 아니었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1928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러시아 출신 무정부주의자, 어머니는 독일 좌파 기자였다.
부모는 이상을 좇아 떠돌았고, 어린 알렉산더는 독일의 한 가정에 맡겨져 혼자 자랐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절, 그로텐디크와 어머니는 르베르네 수용소에 갇혔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가 "적성 외국인"을 가두던 곳이었다.
아버지 사샤 샤피로는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됐다.
종전 이후에도 그에게 국적은 없었다.
소련도, 독일도, 프랑스도 그를 자국민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1971년까지, 그러니까 마흔셋이 될 때까지, 어느 나라 여권도 없이 살았다.
그런데 이 사람을 만나러 전 세계 수학자들이 파리 근교로 줄을 서고 있었다.
그는 수학계의 노벨상을 받기로 결정된 그해, 시상식장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1958년 그로텐디크는 IHÉS에 합류했다.
파리 근교에 있는 수학·이론물리 연구소로, 강의 의무도 없이 오직 연구만 하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매일 12시간씩, 12년 동안 일했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스킴(scheme)'이라는 개념이었다.
기존 대수기하학이 특정 수 체계 위에서만 작동했다면, 스킴은 어떤 수학적 세계에서도 돌아가는 범용 언어였다.
마치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메타 문법을 처음으로 만든 것처럼.
그 결과물인 EGA와 SGA, 수천 페이지의 원고는 지금도 현대 수학의 기초다.
1966년 국제수학연맹은 그에게 필즈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4년에 한 번, 40세 미만 수학자에게만 주는 상으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시상식은 소련 모스크바였다.
하지만 그로텐디크는 가지 않았다.
"소련 정부의 인권 탄압에 항의한다"는 이유였다.
수십 년 공들인 커리어의 정점에서, 상을 받으러 가는 대신 항의를 선택했다.

그는 자기 책상 위 종이 한 장을 보고, 12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버렸다.
1970년 그로텐디크는 IHÉS의 재정 내역을 살펴보다가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연구소 운영비 일부가 프랑스 국방부에서 나오고 있었다.
군부 돈이 자기 연구실에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냈다.
이것이 갑작스러운 변심이 아니었다.
그로텐디크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미군의 공습이 이어지는 하노이로 직접 날아가 수학을 강의한 사람이었다.
폭격 소리를 배경 삼아 칠판 앞에 서면서, 그는 수학이 평화의 언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사임 후 그는 환경운동 단체 Survivre et Vivre, 우리말로 '생존과 삶'을 세웠다.
수학계 동료들은 수군댔다. "그로텐디크가 미쳐버렸어."
하지만 그의 눈엔 달랐다.
군사 자금을 받는 연구소에서 '순수 수학'을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가장 추상적인 수학과 가장 직접적인 평화운동을, 그는 하나의 신앙처럼 동시에 붙들고 있었다.
그는 4억 원을 한 장의 편지로 거절한 뒤, 23년 동안 단 한 명의 옛 동료도 만나지 않았다.
1988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그로텐디크에게 크라푸드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노벨상이 다루지 않는 분야의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수학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 중 하나로 꼽힌다.
상금은 4백만 스웨덴 크로나, 당시 한화로 약 4억 원이었다.
그는 공개 편지를 썼다.
"이 상은 젊은 연구자에게 가야 한다. 나는 이미 충분히 받았다."
그리고 거절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1년 8월,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라졌다.
피레네 산기슭의 라세르라는 마을, 주민 몇십 명밖에 없는 곳의 돌집으로 들어갔다.
전기도 거의 쓰지 않았고, 식물만 먹었으며, 외부 방문을 거의 허락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는 1만 페이지가 넘는 글을 썼다.
수학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 꿈, 존재에 대한 명상이었다.
그렇게 23년을 보내다 2014년 세상을 떴다.
수학을 가장 멀리까지 밀어붙였던 사람이, 마지막엔 수학에서도 세상에서도 가장 멀리 떠나 있었다.
그가 피레네 산속에서 1만 페이지 동안 찾으려 했던 것은, 수학으로도 끝내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을까.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