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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 편지를 받았을 때 G.H. 하디는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1913년 1월, 영국 최고의 수학 연구소인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 인도 마드라스 항만청 사무원이 보낸 9쪽짜리 손글씨 편지가 도착했다.
박사학위도 없고, 추천장도 없고, 제대로 된 수학 교육을 받은 흔적조차 없는 식민지인의 편지였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다.
아무 대학도 안 다닌 자기학습자가 이메일로 미발표 논문을 보냈고, 노벨상급 교수가 그걸 밤새 읽고 비행기표를 끊어준 것이다.
그런데 하디는 그 편지를 읽고 이튿날 아침 동료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진짜야. 이 사람은 천재가 분명해."
편지를 쓴 사람은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이었다.
인도 남부 마드라스의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대학에 두 번 들어갔지만 수학 외 과목을 전부 낙제해 퇴학당한 사람이었다.
하디는 그 편지 안의 수식들을 밤새 들여다보다가, 교과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증명된 결과들을 마주했고, 결국 확신을 굳혔다.
라마누잔이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건 이듬해였다.
하디는 그를 직접 연구실로 불러들였고, 두 사람은 이후 5년간 함께 수십 편의 논문을 썼다.
학력도 추천장도 없는 인도 사무원이 영국 수학계의 심장부에서 동등한 동료로 연구한 건, 당시 기준으로 보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디가 침대 옆에서 시간을 때우려 꺼낸 한마디가 백 년이 지나도 인용되는 일화가 됐다.
1918년, 라마누잔은 영국 생활에 지쳐 결핵에 걸렸고 푸트니의 요양원에 누워 있었다.
하디가 병문안을 갔는데,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이렇게 말을 꺼냈다. "내가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던데, 참 지루한 수야."
라마누잔은 그 자리에서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1729는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수예요."
그리고 즉석에서 덧붙였다. "1³+12³이기도 하고, 9³+10³이기도 하거든요."
세제곱수의 합이 낯설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1³은 1×1×1=1이고, 12³은 12×12×12=1728이니 합하면 1729다.
9³은 729, 10³은 1000이고, 역시 합하면 1729다.
친구 병문안 가서 날씨 얘기를 꺼냈더니, 친구가 몸이 아파 누운 채로 그 자리에서 기상학 논문 한 편을 즉석으로 만들어내는 광경이다.
이날 이후 1729는 수학계에서 하디-라마누잔 수라는 이름을 얻었고, 비슷한 성질을 가진 수들을 통칭하는 범주 자체가 생겨났다.
아픈 사람을 위로하러 갔다가 수학사에 이름을 남긴 잡담이 된 셈이다.
하디는 신이 있다면 그를 자신의 적이라 부르고 싶다고 공공연히 선언한 수학자였다.
그냥 "신을 믿지 않는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맑은 날에도 두꺼운 외투와 우산을 끌고 다니며 "신이 일부러 날씨를 좋게 만들어줄 테니 반대로 준비해야지"라고 빈정댔다.
그런데 그가 케임브리지로 불러들인 라마누잔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라마누잔은 힌두교 여신 나마기리를 믿었고, 수식들이 꿈에 나타나 여신이 직접 알려준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그 꿈을 노트에 받아 적었고, 그게 수학 논문이 됐다.
무신론자 하디는 그 신앙을 단 한 번도 비웃지 않았다.
라마누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디는 그냥 그 수식의 결과만 확인했다.
옳으면 받아들이고, 틀리면 고쳤다. 신앙이 어디서 왔든 수학은 수학이었으니까.
하디 자신의 말년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1947년, 노년에 몸이 쇠약해진 그는 수면제를 한꺼번에 삼켜 스스로 생을 끝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몇 달 뒤 그는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 사이에 남긴 에세이가 지금도 읽힌다.
하디는 자기 수학이 쓸모없다는 사실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는데, 그 쓸모없음이야말로 오늘날 모든 인터넷 결제를 지키고 있다.
1940년, 몸이 더 이상 연구를 허락하지 않자 하디는 마지막으로 에세이 한 편을 썼다.
'어느 수학자의 변명' 이다. 수학자가 왜 수학을 하는지, 그 삶이 정당한지 스스로에게 묻는 내용이었다.
그 에세이에서 하디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내 수학은 결코 어떤 실용적 목적에도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
그가 평생 연구한 건 정수론, 특히 소수에 관한 이론이었다. 소수란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나눌 수 없는 수인데, 2, 3, 5, 7, 11처럼 이어지면서도 패턴이 없어 예측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하디가 세상을 떠나고 30년이 지난 1977년, 세 명의 수학자가 RSA 공개키 암호를 발명했다.
인터넷으로 카드번호를 보낼 때 그 번호를 암호화하는 방식인데, 핵심 원리가 바로 소수의 예측 불가능성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소수를 곱하면 누구도 그 결과를 다시 두 소수로 분해할 수 없다는 성질, 하디가 "쓸모없다"고 자랑한 바로 그 수학이었다.
"이건 절대 돈 안 되는 취미야"라고 평생 자랑한 사람의 작업이 사후에 산업 전체의 토대가 된 셈이다.
오늘 여러분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 버튼을 누를 때, 카드 정보를 지키는 암호의 뿌리는 케임브리지 수학자가 "나는 이게 쓸모없어서 좋다"라고 자랑스럽게 써 내려간 그 논문들이다.
하디는 순수하게 아름다워서 수학을 했는데, 결국 가장 실용적인 것을 만들어낸 사람이 됐다. 그렇다면 '쓸모없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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