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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필즈상 수상자가 인생에서 처음 완성한 작품은 논문이 아니라 컴파일러였어요.
1975년 제네바에서 태어난 마르틴 하이러는 10대 시절, 요즘으로 치면 중학생 나이에 혼자 어셈블리 컴파일러를 만들었습니다.
어셈블리란 컴퓨터가 직접 읽는 기계어와 거의 한 단계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저수준 언어예요. 오늘날 파이썬 한 줄로 처리하는 일을 수십 줄로 직접 써야 하는 언어입니다.
그런 언어로 컴파일러까지 만들었다는 건, 단순히 "코딩을 잘한다"는 수준이 아니에요.
컴파일러는 사람이 쓴 코드를 컴퓨터가 이해하는 언어로 번역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번역기 앱을 직접 만든 거예요, 그것도 14살 소년이 혼자서.
당시 어린 하이러를 묘사하는 단어는 "수학 영재"가 아니라 컴퓨터광에 가까웠어요.
수학 증명보다 코드가 먼저였고, 어떤 도구가 필요하면 직접 만들어버리는 아이였습니다.
훗날 수학의 최고 영예를 받게 될 사람의 출발점이 거기였다는 거, 꽤 의외죠.

하이러는 수학 박사학위가 없어요. 그런데 2014년, 그는 수학의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2001년 제네바 대학교에서 받은 그의 박사학위 전공은 수학이 아니라 물리학이었어요.
동역학계, 그러니까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수식으로 기술하는 분야였죠.
그로부터 13년 뒤인 2014년, 서울에서 세계수학자대회(ICM)가 열렸어요.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올림픽처럼 전 세계 수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최대 행사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이러는 필즈상을 받았어요. 수학계에서 노벨상에 해당하는 상이에요.
음대 졸업생이 미술계 최고상을 받는 것과 비슷한 그림이에요.
학위 분류가 그 사람의 진짜 능력을 담아내지 못한 거죠.
수학자 공동체가 "이 시대 최고 수학자"라고 인정한 사람이 정작 수학과 박사 출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하게 느껴질 만합니다.

그 방정식은 풀 수 없는 게 아니라, 적을 수조차 없었어요. 하이러는 답 대신 새로운 문법을 만들었습니다.
2013~2014년에 발표한 정칙성 구조(regularity structures) 이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문제의 방정식은 KPZ 방정식이에요.
무작위로 자라나는 표면을 기술하는 방정식인데, 커피 위에 우유를 부었을 때 경계면이 번지는 패턴 같은 것들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려 할 때 쓰입니다.
그런데 이 방정식이 수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형태였어요. 쓸 수는 있는데, 그 안에 등장하는 항들이 서로 충돌해서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이걸 외국어에 비유하면 이런 상황이에요.
어떤 문장을 번역하려는데, 그 문장이 그 언어의 문법에 맞지 않게 적혀 있는 거예요.
번역 방법을 찾기 전에, 그 언어의 문법 체계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던 거죠.
하이러가 한 건 딱 그거예요.
답을 구하는 방법을 찾은 게 아니라, 그 방정식이 수학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새로운 표현 언어 체계를 발명한 겁니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이 이론을 "풀이"가 아니라 "새로운 수학 언어의 탄생"으로 평가해요.
필즈상 수상자가 운영하는 회사가 하나 있어요. 그곳은 수학 연구소가 아니라 Mac용 오디오 편집 앱 회사입니다.
HairerSoft라는 회사인데, 하이러가 박사과정 시절부터 직접 개발해온 Amadeus Pro라는 macOS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요.
Amadeus Pro는 Mac에서 음악 파일을 자르고 붙이고 파형을 편집하는 전문 도구예요.
음향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내고 구매해서 쓰는 유료 소프트웨어입니다.
하이러는 필즈상을 받은 뒤에도 이 앱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부업으로 인디 게임을 만들어 유통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것과 같은 그림이에요.
어떤 수학자들은 그를 "21세기 최고의 확률해석학자"라고 부르고, 어떤 사용자들은 그를 그냥 "버그 리포트에 답해주는 앱 개발자"로만 알아요.
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지금도 그와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거죠.
14살에 어셈블리 컴파일러를 만들던 소년이 수십 년 뒤 수학의 최고상을 받고도 여전히 코드를 짜고 있다는 건, 그가 항상 두 가지를 동시에 살았다는 뜻일 거예요.
문제를 새로운 언어로 정의하는 수학자, 그리고 그 언어를 직접 도구로 만들어내는 개발자.
어쩌면 둘은 원래 같은 충동에서 나온 건지도 모릅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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