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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98년 베를린에서 티모시 가워스가 받은 필즈상은, 수학자들이 50년간 옳다고 믿어온 직관이 통째로 틀렸다는 증명에 주어진 상이었어요.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40세 미만 수학자에게만 주어지는 수학계 최고 권위의 상이에요.
그런데 이번엔 새로운 것을 발견한 공로가 아니라, 모두가 믿어온 것이 틀렸음을 보여준 공로였다는 점이 묘했어요.
가워스가 다룬 것은 바나흐 공간 이론이에요.
바나흐 공간이란 무한히 많은 차원을 가진 함수들의 집합으로, 3차원 공간을 무한대 방향으로 늘려놓은 것이라고 상상하면 얼추 비슷해요.
수학자들이 다루는 가장 추상적인 공간 중 하나예요.
수학자들은 수십 년간 이런 공간에는 반드시 "잘 정돈된 부분공간"이 존재한다고 믿어왔어요.
어떤 도시든 중심가가 있을 거라고 당연히 여기는 믿음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가워스는 1990년대 중반, 중심이 전혀 없는 도시, 거의 아무런 대칭도 없는 기괴한 무한차원 공간을 수학적으로 실제로 구성해 보였어요.
50년간 쌓인 수학계의 직관이 한 번에 무너진 순간이었어요.
바나흐 공간 이론을 개척한 수학자들조차 "이런 괴물이 존재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고 할 만한 결과였죠.

가워스는 자신의 가장 어려운 미해결 문제를 블로그 댓글창에 통째로 던졌어요.
6주 후, 익명의 누군가들이 함께 그것을 풀어버렸고요.
2009년 1월 27일, 가워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거대 협업 수학이 가능한가?"라는 글을 올렸어요.
수학계의 최고 권위자가 전혀 뜬금없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진 셈이었죠.
며칠 뒤 그는 실제 미해결 난제인 밀도 헤일스-주이트 정리를 블로그에 공개했어요.
밀도 헤일스-주이트 정리는 조합론의 한 명제로, 특정 패턴이 충분히 큰 집합에서 반드시 나타난다는 내용이에요.
가워스는 누구든 댓글로 부분 아이디어를 올려도 된다고 규칙을 정했어요.
회사 핵심 신제품 설계도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고 "누구든 끼어들어 함께 만들자"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였죠.
수학자가 가장 아끼는 것, 바로 혼자 발견하는 영광을 스스로 포기한 선언이기도 했어요.
약 6주 만에 40여 명의 협업자가 1,500개 가까운 댓글을 남겼고, 결국 정리의 증명을 완성했어요.
결과는 'D.H.J. 폴리매스'라는 가명으로 학술지에 발표됐어요.
누가 가장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냈는지 알 수 없도록, 처음부터 이름을 지운 거예요.
이 실험은 '폴리매스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이후에도 여러 난제가 이 방식으로 도전을 받았어요.
가워스가 증명한 건 정리 하나가 아니라, 수학이 꼭 혼자 하는 일일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이었어요.

가워스가 올린 한 편의 블로그 글이, 세계 최대 학술 출판사의 정책을 후퇴시켰어요.
2012년 1월 21일, 가워스는 블로그에 "엘스비어, 그것의 몰락에서 내 역할"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어요.
엘스비어는 연 매출 수십억 달러의 세계 최대 학술 출판 기업으로, 수학·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어요.
대학 도서관들은 막대한 구독료를 내면서도 협상 권한이 거의 없는 구조였죠.
수십 년간 무료로 논문을 받아 비싸게 팔아온 시스템에 정면으로 저항한 선언이었어요.
가워스는 그 글에서 엘스비어의 학술지에 더는 논문을 내지 않고, 심사도 편집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베스트셀러 작가 한 명이 출판사 횡포를 더는 못 참겠다며 절연을 선언하자, 전 세계 작가 1만 명이 동참하는 상황과 정확히 같았어요.
며칠 만에 '지식의 비용'(The Cost of Knowledge)이라는 청원이 만들어졌어요.
전 세계 수학자·과학자 1만 명 넘게 서명했고, 엘스비어는 한 달 만에 일부 수학 학술지의 가격 정책을 후퇴시켰어요.
가워스가 이 글을 쓴 건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자신이 더는 그 시스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아주 개인적인 선언이었어요.
그런데 그 개인적인 선언이 수만 명을 움직였어요.

사람들은 가워스의 보이콧과 협업 실험을 갑작스러운 일탈로 봤지만, 그는 필즈상을 받은 직후부터 줄곧 일반 독자를 위한 수학책을 써오고 있었어요.
2002년, 가워스는 「수학: 매우 짧은 입문」(Mathematics: A Very Short Introduction)을 직접 썼어요.
100쪽짜리 일반인용 입문서로, 수학이 무엇인지 배경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도록 쓰인 책이에요.
수학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수학을 가장 모르는 사람을 위해 쓴 책이었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어요.
2008년에는 1,000쪽이 넘는 「프린스턴 수학 안내서」(The Princeton Companion to Mathematics)를 편집했어요.
250명 넘는 수학자를 모아,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함께 설명하게 한 프로젝트였어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시간을 쪼개 청소년 과학책을 쓰고, 동료 200명을 모아 함께 그 책을 만드는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게다가 가워스는 'Tricki'라는 수학 증명 기법 위키도 시도했어요.
베테랑 수학자들의 머릿속에 쌓인 암묵적 기술, 교과서엔 안 나오지만 실제로 문제를 풀 때 쓰이는 요령들을 공개 자료로 만들겠다는 시도였죠.
결국 그의 행보 전체에는 하나의 방향이 있었어요.
수학을 둘러싼 장벽들, 전문가들 사이의 벽, 출판사가 만든 벽, 설명 방식이 만든 벽을 하나씩 허무는 일이었어요.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가 왜 블로거가 되고, 보이콧 선언자가 되고, 입문서 저자가 됐는지는 처음부터 같은 이유였던 셈이에요.
그러면 그가 다음에 허물려는 벽은 어디일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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