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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400년간 서양 우주관을 떠받친 책의 별 관측 데이터가, 사실은 한 번도 하늘을 직접 보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1977년, 천체역학자 로버트 뉴턴은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의 범죄』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냈어요.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 즉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13권짜리 천문학 백과사전의 관측 기록을 하나하나 역산해봤어요.
그랬더니 이상한 점이 드러났어요.
알마게스트에 적힌 별의 위치와 관측 날짜가, 알렉산드리아의 실제 하늘과 어긋났어요.
더 심각한 건, 그 수치들이 프톨레마이오스보다 200여 년 앞서 살았던 그리스 천문학자 히파르코스(Hipparchus)의 자료와 수상할 정도로 일치한다는 거예요.
히파르코스는 기원전 2세기 사람이에요.
프톨레마이오스는 기원후 2세기 사람이고요.
뉴턴의 결론은 단 하나였어요. 프톨레마이오스가 선배의 200년 전 관측 기록을 자기가 직접 관측한 것인 양 옮겨 적었다는 것.
오늘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실험도 안 하고 결과 그래프부터 그린 다음, 선배 논문의 숫자를 끼워 맞춰 레포트를 낸 학부생이 있어요.
그런데 그 레포트가 1400년 동안 인류의 교과서로 쓰인 거예요.
역사학자들이 뉴턴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인 건 아니에요.
"프톨레마이오스가 히파르코스의 자료를 참고한 건 맞지만, 위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거든요.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권위를 누린 과학서의 데이터에 심각한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있었음에도, 사람들이 1400년간 프톨레마이오스를 버리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그의 공식이 더 잘 맞았기 때문이에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단순하지 않았어요.
그는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단순히 돌지 않는다고 봤어요.
행성이 작은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그 작은 원 자체가 큰 원 위에서 다시 도는 이중 구조를 제안했어요.
작은 원을 주전원(epicycle), 큰 원을 이심원(deferent)이라고 해요.
여기에 동시심(equant)이라는 가상의 점을 하나 더 추가했어요.
동시심이란, 지구도 아니고 원의 중심도 아닌 제3의 점을 기준으로 행성이 일정한 속도로 도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수학 장치예요.
이 복잡한 구조 덕분에, 전제 자체는 틀렸지만 공식의 정확도는 놀라웠어요.
심지어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 모델을 들고 나왔을 때, 코페르니쿠스의 초기 계산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공식이 행성 위치를 더 정확히 예측했어요.
항해사와 점성술사가 1400년간 그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예요.
잘못된 가정 위에 세운 스프레드시트가, 올바른 가정으로 만든 새 시트보다 매출 예측을 더 잘 맞히는 상황과 같아요.
틀린 전제라도 충분히 정교한 수학적 보정이 더해지면, 관측 결과 자체는 맞출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틀린 답을 정답으로 쓰며 1400년을 살아냈어요.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이 1400년을 버틴 건 그가 속한 그리스 문명 덕분이 아니었어요.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서유럽은 혼란기로 접어들었어요.
그리스어로 쓰인 원본 『수학집성(Mathematike Syntaxis)』은 서유럽에서 거의 잊혀갔어요.
교회와 왕국들이 전쟁과 생존에 바쁜 동안, 그리스 과학은 서서히 먼지를 덮어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9세기 바그다드에서 일이 생겼어요.
이슬람 왕조 아바스 칼리파국이 세운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에서 아랍 학자들이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한 거예요.
지혜의 집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 기관으로,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의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집대성하던 곳이었어요.
학자들은 이 책을 '알마지스티(al-majisti)'라고 불렀어요.
아랍어로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알마게스트'라는 이름이 그리스어가 아니라 이 아랍어에서 온 거예요.
그렇게 아랍 문명이 수백 년간 보존하고 주석을 달며 개량한 책이, 12세기 스페인 톨레도에서 라틴어로 재번역됐어요.
서유럽이 그제야 자기 문명의 뿌리를 다시 발견한 거예요.
그리스 천문학이 유럽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이슬람 문명이 없었다면 이 책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거예요.
한국 고전이 한반도에서 잊힌 사이, 이웃 나라가 번역하고 필사해서 수백 년 뒤에 되돌려준 것과 같아요.
그리고 책의 이름마저 이웃 나라 언어로 바뀐 채로요.
코페르니쿠스가 책을 낸 그날, 사람들은 곧장 프톨레마이오스를 버렸을까요.
코페르니쿠스 본인부터 그러지 못했어요.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를 출간했어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었어요.
하지만 그 책 안을 들여다보면 낯익은 도구들이 가득해요.
주전원, 이심원, 등속 원운동. 전부 프톨레마이오스가 만든 수학 도구예요.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와 태양의 자리만 바꿨을 뿐, 행성 운동을 계산하는 방식은 그대로 빌려왔어요.
새로운 세계관을 가져왔지만, 그것을 계산하는 언어는 여전히 옛것이었어요.
천동설이 완전히 무너진 건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나온 뒤로도 한참이 지나서였어요.
1609년, 케플러(Kepler)가 행성이 원이 아닌 타원 궤도로 돈다는 것을 밝혀냈어요.
그리고 갈릴레오(Galileo)가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이 목성 주위를 도는 것을 관측하면서, 지구가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전제가 비로소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나온 게 1543년이고, 케플러의 타원 궤도가 나온 게 1609년이에요.
그 사이가 66년이에요.
학설의 공식 사망 선고까지 66년, 실질적으로는 그 뒤로도 수십 년이 더 걸렸어요.
새 운영체제가 출시됐는데 내부 코드 절반이 여전히 옛 시스템에서 복사된 상태로 굴러가는 것과 같아요.
프톨레마이오스의 진짜 죽음은 1543년이 아니라, 케플러와 갈릴레오가 모든 퍼즐을 맞춘 17세기 초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오히려 더 무서운 이야기예요.
"틀렸다"는 게 밝혀진 뒤에도 그것을 대체하는 데 150년이 걸렸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틀은 얼마나 오래 버티게 될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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