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훗날 20세기 수학을 다시 쓴 남자는 9살에 인도 경전을 원어로 읽고 있었다.
앙드레 베유는 1906년 파리에서 태어났는데, 9살에 이미 그리스어를 뗐고, 곧이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웠다.
산스크리트어는 2천 년 전 인도에서 쓰인 고전 언어다.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생이 영어 대신 라틴어와 고대 아랍어를 동시에 독학하는 셈이다.
베유는 그 언어로 바가바드 기타를 원문으로 읽었다.
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의 핵심 경전으로, 인도의 일리아드라 불리는 2천 년 된 서사시다.
그러면서 수학에 빠졌다.
세 살 어린 여동생 시몬 베유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랐는데, 시몬은 훗날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가 됐다.
이 남매가 공통으로 갖고 있던 건 놀라울 정도로 빠른 언어 흡수력이었다.
반전은 이렇다.
20세기에 가장 추상적이고 차갑고 형식적인 수학을 만든 사람이, 동양의 뜨겁고 시적인 경전 언어로 사고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베유는 2차 대전이 터지자마자 프랑스를 버리고 중립국 핀란드로 도망쳤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프랑스가 참전을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프랑스 청년들은 징집 명령을 받았다.
베유는 거부했다.
회사가 싫어 갑자기 사표를 쓰고 외국으로 도망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베유는 그걸 전쟁 중에 진짜로 했다.
그리고 상황은 거기서 훨씬 더 나빠졌다.
핀란드로 건너간 직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는 소련-핀란드 전쟁이 터졌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 남자가 수학 노트를 들고 돌아다니니, 핀란드 당국 눈에는 소련 스파이로 보였다.
노트에 빼곡한 수학 기호들이 암호 해독 도구처럼 보인 거다.
베유는 체포됐고 사형 직전까지 몰렸다.
그를 구한 건 롤프 네반리나, 헬싱키 대학 학장이자 수학자로, 베유가 진짜 수학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줬다.
풀려났지만 곧바로 프랑스로 송환됐고, 이번엔 탈영죄로 루앙 감옥에 갇혔다.
폭력이 싫어 도망친 수학자가, 적국 스파이로 몰려 사형 직전에 갔다가, 살아남아 돌아오니 자국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베유는 사형까지 거론된 감옥 독방에서, 평생 풀어야 할 정리를 풀어버렸다.
1940년 봄, 루앙의 본 누벨 감옥. 탈영죄는 최대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혐의였다.
베유는 그 독방에 종이와 펜만 들고 앉아, '함수체 위의 리만 가설'을 증명해냈다.
리만 가설은 소수의 분포 패턴에 관한 문제다.
19세기에 제기된 후 20세기까지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수론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다.
베유가 감옥에서 풀어낸 건 그 가설의 특수한 형태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수학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여동생 시몬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유는 이렇게 썼다.
"감옥에서 수학이 너무 잘 풀려서, 1년에 두세 달은 다시 감옥에 가고 싶어질까 봐 두렵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 한 줄이, 그 시절 베유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준다.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 일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베유의 마감은 사형이었고, 그는 그 압박 속에서 오히려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그것도 독방에서, 혼자.

베유는 자기 이름을 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수학자의 가면을 쓰기로 했다.
1934년, 베유는 수학자 친구 몇 명과 파리의 카페에 모여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수학자 이름으로 수학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회사 동료 여러 명이 공동 익명 계정을 만들고, 그 계정으로 수학 교과서 전집을 출간하는데, 정작 자기 이름은 한 글자도 내걸지 않는 것이다.
멤버 명단은 철저히 비공개였고, 책은 오직 '부르바키'라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만 나왔다.
그 시리즈는 20세기 후반 전 세계 수학 교과서의 표준이 됐다.
베유는 자기 이름을 가장 빛낼 수 있는 전성기에, 가짜 이름 뒤에 숨었다.
그리고 그 가짜 이름이 베유의 본명보다 훨씬 유명해졌다.
베유 자신은 훗날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정착했다.
아인슈타인이 연구했던 그 연구소에서, 1998년 92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수학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전 세계 수학과 학생들은 '부르바키'의 책으로 공부하면서 베유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부르바키는 죽지 않았다.
베유가 만든 유령이 아직도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거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