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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세기 함수해석학은 어느 공원 벤치 위 우연한 한마디에서 시작됐어요.
1916년 봄, 폴란드 수학자 후고 슈타인하우스가 크라쿠프 플란티 공원을 걷고 있었어요.
슈타인하우스는 20세기 폴란드 수학파의 중심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근처 벤치에서 낯선 단어가 들렸어요.
"르베그 적분."
르베그 적분은 곡선 아래 면적을 재는 방법이에요.
기존 방식보다 훨씬 정밀하게, 더 복잡한 함수에도 적용할 수 있는 20세기 초의 최신 이론이었어요.
당시 폴란드에서 이걸 제대로 다루는 수학자는 손에 꼽혔어요.
슈타인하우스가 목소리를 향해 다가갔어요.
벤치에 앉아 토론하던 청년이 슈테판 바나흐, 24살이었어요.
사생아로 태어나 양어머니 손에서 자랐고, 정규 대학을 마치지 못한 채 가정교사와 철도 기술자로 살던 사람이었어요.
카페 옆자리에서 누군가 양자역학을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알고 보니 동네 편의점 알바생이었던 것과 비슷한 충격이에요.
슈타인하우스는 그 자리에서 "이 사람과 함께 일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게 현대 수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 산책이 됐어요.

박사학위는 보통 200쪽짜리 논문이 필요해요.
바나흐는 한 글자도 쓰지 않고 받았어요.
슈타인하우스 덕분에 르부프 대학에 자리를 잡은 바나흐는 이미 함수해석학을 새로 쓸 만한 결과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었어요.
르부프 대학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르비우에 있던 폴란드 명문 대학이에요.
그런데 바나흐는 박사논문만은 계속 미뤘어요.
"더 좋은 결과가 곧 나올 텐데, 왜 지금 정리해요?"
결국 동료들이 꾀를 냈어요.
복도에서 바나흐가 무심코 던지는 수학적 통찰들을 몰래 받아 적었어요.
그것들을 모아 한 편의 논문으로 엮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바나흐를 어떤 방으로 데려갔어요.
방 안에는 바르샤바에서 온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었어요.
바나흐는 자기 이름이 붙은 논문인지도 모른 채 질문에 답했고, 그 자리에서 박사가 됐어요.
졸업 시험을 안 보겠다고 버티는 친구를 다른 친구들이 짐을 싸 들고 시험장으로 끌고 들어간 셈이에요.
바나흐 본인만 몰랐어요.

어떤 카페는 영수증보다 수학 공식이 더 많이 적혀 있었어요.
1930년대 르부프에 있던 스카치 카페(Kawiarnia Szkocka)가 그런 곳이에요.
바나흐와 동료 수학자들이 매일 저녁 모여 수다처럼 수학을 했어요.
종이가 없으면 대리석 테이블 위에 연필로 직접 썼어요.
그런데 청소부가 다음 날 아침마다 깨끗이 닦아버렸어요.
그래서 바나흐의 아내 우치아가 두꺼운 노트를 한 권 사다 줬어요.
그게 스카치 북(Scottish Book)이에요.
카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인데, 내용은 전부 아직 풀리지 않은 수학 문제들이었어요.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는 상금도 걸었어요.
상금이 좀 특이해요.
술 한 병부터, 살아 있는 거위까지였어요.
그리고 1972년, 스웨덴 수학자 페르 엔플로가 41년 묵은 문제를 마침내 풀었어요.
수학자 마주르가 1930년대에 약속한 상금, 살아 있는 거위 한 마리를 직접 받아 갔어요.
단골 술집 냅킨에 적힌 낙서가 40년 뒤 실제 거래로 이어진 셈이에요.
스카치 북은 지금도 수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해결 문제 목록 중 하나예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수학자가 전쟁 중 한 일은, 매일 자기 다리를 이에게 내어주는 것이었어요.
1941년 나치 독일이 르부프를 점령했고, 많은 폴란드 학자가 그달에 처형됐어요.
바나흐는 살아남기 위해 바이글 연구소(Rudolf Weigl Institute)에 들어갔어요.
바이글 연구소는 발진티푸스 백신을 연구하는 곳이었어요.
발진티푸스는 이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당시 유럽에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어요.
백신을 만들려면 이의 몸 안에서 균을 키워야 했고, 그러려면 이에게 먹일 사람의 피가 필요했어요.
바나흐는 매일 다리에 작은 나무 우리를 매달았어요.
우리 안에는 살아 있는 이들이 들어 있었고, 몇 시간씩 자기 피를 빨렸어요.
그 대가로 식량 배급과 체포 면제증을 받았어요.
함수해석학의 토대를 쌓은 사람이,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기생충의 숙주로 살았어요.
그리고 종전 직후 1945년 8월, 53살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공원 벤치에서 발견되어 박사논문 없이 박사가 됐고, 카페 대리석 위에 수학을 썼고, 마지막엔 이에게 피를 내어주며 버텼던 사람이, 그렇게 갔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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