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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92년 봄, 막스플랑크 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의 책상 위에 한 청년이 가져온 손글씨 원고가 놓였어요.
그 안에 누구도 풀지 못한 추측의 증명이 적혀 있었어요.
당시 막심 콘체비치는 28살이었고, 박사학위도 아직 없었어요.
그런데 이 연구소에 도착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수학계의 미해결 난제를 들고 나온 거예요.
비유하면 이런 상황이에요.
반 전체가 한 학기 내내 못 풀던 시험 문제를, 전학 온 학생이 첫 주에 풀어서 제출한 거예요.
그것도 박사 과정도 마치지 않은 채로요.
그가 증명한 건 비텐의 추측이에요.
물리학자 에드워드 비텐이 1990년 끈이론 연구 중에 내놓은 가설이에요.
끈이론이란 우주의 근본 입자가 점이 아니라 아주 작은 "끈"이라는 물리 이론인데, 비텐은 그 연구를 하다가 "곡선들의 모양을 기술하는 공간에서 특정 숫자들이, 전혀 다른 방정식 체계의 해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가설을 내놨어요.
수학자들이 증명하지 못하고 있던 이 문제를, 콘체비치가 3개월 만에 풀어낸 거예요.
결국 본 대학은 이 증명 논문을 그대로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정했어요.

한국학을 공부하는 러시아인이라면 콘체비치라는 이름을 매일 봐요.
그 이름을 만든 사람의 아들이 1998년 필즈상을 받았어요.
막심의 아버지 레프 콘체비치는 러시아 한국학의 선구자예요.
1966년, 그는 한국어를 키릴문자로 옮기는 통일된 규칙을 발표했어요.
키릴문자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 등에서 쓰는 알파벳 체계인데, 그 전까지 한국어를 러시아식으로 어떻게 적을지 기준이 없었거든요.
레프가 만든 이 규칙은 오늘날 '콘체비치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의 표준 한국어 표기법으로 자리 잡았어요.
막심은 어린 시절부터 한국어 사전과 외국어 자료에 둘러싸인 학자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콘체비치'라는 이름은 묘하게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학 강의에서는 표기법의 이름이고, 수학 강의에서는 필즈상 수상자의 이름이에요.
한 가족 안에서 두 분야의 표준이 만들어진 셈이에요.

콘체비치가 풀어낸 문제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수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먼저 던진 질문이었다는 거예요.
비텐의 추측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의 또 다른 업적인 콘체비치 적분도 양자장론에서 나온 아이디어예요.
양자장론이란 입자 물리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언어인데, 콘체비치는 이 언어로 매듭이 얼마나 꼬여 있는지를 측정하는 불변량을 만들어냈어요.
거울 대칭성은 두 가지 전혀 다른 기하학적 공간이 거울처럼 짝을 이룬다는 물리학의 직관이었어요.
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채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만 쓰이던 개념이었는데, 콘체비치가 수학적으로 정식화했어요.
비유하자면, 어떤 요리사가 화학 실험실 기법으로 미슐랭 별을 받은 것과 비슷해요.
두 분야의 경계를 허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평가예요.
하지만 수학계 안에서 물리학의 언어를 쓰는 건 한때 이단처럼 여겨졌어요.
순수수학자들은 엄밀한 증명 없이 물리학자들이 "그럴 것 같다"고 짐작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콘체비치는 바로 그 짐작들을 수학의 언어로 번역해서, 막연한 직관을 정확한 증명으로 바꿔놨어요.

모스크바 대학원을 끝까지 마치지 않은 채 떠났던 청년은 1998년 베를린에서 필즈 메달을 받았어요.
필즈상은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려요.
4년마다 한 번, 40세 미만의 수학자 중 최대 4명에게만 수여돼요.
1998년 베를린 국제수학자대회에서 콘체비치는 보처즈, 가워스, 맥뮬런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됐어요.
수상 이유로는 비텐의 추측 증명, 콘체비치 적분, 거울 대칭성 정식화, 그리고 푸아송 다양체의 변형 양자화가 모두 포함됐어요.
푸아송 다양체란 고전역학에서 쓰이는 기하학적 공간인데, 콘체비치는 그것을 양자역학의 언어로 변형하는 방법론을 만들어냈어요.
대학원 중퇴 후 불과 6년 만의 일이었어요.
그는 이후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IHES)의 종신교수가 됐고, 2012년에는 브레이크스루 수학상 첫 수상자 중 한 명이 됐어요.
브레이크스루상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상금이 필즈상보다 많기로 유명한 상이에요.
박사학위를 받으러 갔다가 3개월 만에 난제를 풀어버린 청년이, 결국 수학의 모든 영예를 가져갔어요.
그가 물리학자의 짐작에서 출발해 수학의 정점에 닿는 데 걸린 시간은, 놀라울 만큼 짧았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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