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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63년 이전, 중국 수학자들은 원의 둘레가 지름의 정확히 3배라고 믿었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이 값을 의심하지 않았다.
당시 기준서는 『구장산술(九章算術)』이었다.
한나라 때 편찬된 고대 중국의 표준 수학 교과서로, 오늘날로 치면 전국 모든 학교에서 쓰이는 국정 교과서다.
그 책이 원주율을 '정확히 3'으로 적어두었다.
학교 교과서가 '원주율은 그냥 3이다'라고 적어두고 200년이 흐른 상황이다.
누군가 손을 들고 "선생님, 그거 틀린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
그 손을 든 사람이 류휘(劉徽)였다.
류휘의 방법은 우스울 만큼 단순했다.
원 안에 다각형을 그리고, 변의 수를 계속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케이크를 떠올리면 된다.
둥근 케이크를 6조각으로 자르면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하지만, 192조각으로 자르면 잘린 선들이 거의 곡선처럼 보인다.
류휘는 이 발상을 수학으로 정확하게 계산했다.
그는 원 안에 정육각형을 그려 시작해, 변의 수를 6→12→24→48→96→192로 계속 두 배씩 늘렸다.
이것을 할원술(割圓術)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원을 자르는 기술'이다.
정192각형에서 류휘는 원주율 3.141을 얻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후대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정3072각형까지 끌고 가서 3.1416을 계산해냈다.
3072각형. 전자계산기도 없이, 종이와 붓만으로.
류휘는 자신의 주석에 단 한 문장으로 미적분의 핵심을 적어두었다.
"잘게 자르면 자를수록 손실이 줄어든다. 끝까지 자르고 또 자르면, 결국 원과 합쳐져 잃는 것이 없다."
이것이 왜 대단한가.
1400년 뒤인 17세기,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발명했다.
그 핵심 아이디어는 '무한히 잘게 쪼개면 오차가 0에 가까워진다'는 극한(limit) 개념이었다.
극한이란 간단히 말해, 어떤 값에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결코 완전히 닿지 않는 상태다.
스마트폰 사진의 픽셀을 생각하면 된다. 픽셀 하나하나는 네모난 점이지만, 픽셀이 충분히 작아지면 눈에는 완전한 곡선으로 보인다.
류휘가 말한 것이 정확히 그거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가 263년 류휘의 주석 한 줄에 이미 담겨 있었다.
뉴턴은 이 개념에 수식을 붙이고 기호를 만들었다.
류휘는 말로 썼다. 하지만 본질적인 발상은 같다.
류휘가 원을 자르던 263년, 위나라 군대는 촉한의 수도 성도를 함락시키고 있었다.
삼국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제갈량이 죽고 수십 년이 지난 그해, 위나라가 마침내 촉한을 무너뜨리며 삼국 통일을 향해 나아가던 시점이다.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해 중 하나였다.
그 해에, 류휘는 칼 대신 붓을 들고 종이 위에서 원을 자르고 있었다.
그는 위나라의 하급 관리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출생연도도, 사망연도도, 어떤 관직이었는지조차 기록에 남지 않았다.
그가 남긴 것은 『구장산술』 주석과 『해도산경(海島算經)』 두 권뿐이다.
해도산경은 섬의 높이와 거리를 수학적으로 측량하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전쟁 소식이 매일 들리는 시대에, 그는 묵묵히 원만 자르고 있었다.
류휘는 유명해지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으니까.
다만 틀린 것이 있었고,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던 것 같다.
수백 년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교과서의 오답을 혼자 고치러 나선 그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그 용기를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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