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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학 학회장 문이 열리면, 누가 빌라니인지 묻는 사람은 없어요.
거미 브로치를 보면 되니까요.
세드릭 빌라니는 검은 3피스 정장에 라발리에르를 두르고 학회장에 나타나요.
라발리에르는 19세기 프랑스 시인들이 매던 넓고 풍성한 실크 넥타이예요.
거기에 가슴에는 큼지막한 은제 거미 브로치가 늘 달려 있어요.
21세기에 플라즈마 물리학과 확률론의 교차점을 연구하는 수학자가, 보들레르 시대 복장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보들레르는 19세기 프랑스 시인인데, 지금 기준으로 치면 160년쯤 전 패션이에요.
회의실에 거미 브로치를 단 검은 정장이 들어서는 순간, 눈이 그 사람에게 고정되죠.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빌라니는 수학 강연 무대보다 인터뷰 사진에서 더 자주 검색돼요.
21세기 수학자 중에 이렇게 생긴 사람은 그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 없어요.
수학계의 노벨상은 4년에 한 번, 40세 이하에게만 줘요.
빌라니는 36세에 그 상을 받았어요.
필즈상은 수학의 모든 상 중 가장 권위 있는 상이에요.
노벨상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는데, 만 40세가 넘으면 아예 후보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받는다는 건, 가장 젊고 창의적인 시기에 수학의 정점에 올랐다는 뜻이에요.
빌라니는 2010년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ICM)에서 이 상을 받았어요.
수상 이유는 볼츠만 방정식과 란다우 감쇠 연구였어요.
볼츠만 방정식은 기체 분자 수억 개가 충돌하는 혼돈을 하나의 수식으로 묘사한 공식이에요.
19세기 물리학자 볼츠만이 만들었는데, 빌라니는 그 방정식이 수학적으로 진짜 성립하는지를 엄밀하게 증명해냈어요.
란다우 감쇠는 조금 더 신기한 현상이에요.
플라즈마 안에서 파동이 아무 마찰 없이도 저절로 사라지는 건데, 욕조 물을 힘차게 휘저었다가 손을 빼는 장면을 떠올리면 비슷해요.
물결이 왜 잦아드는지, 마찰 말고 다른 이유를 수식으로 증명하는 거예요.
빌라니가 평생 붙잡은 질문은 "혼돈이 어떻게 질서로 수렴하는가"였어요.
그런데 그의 인생은 이후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요.
수학 책에 '여기서 막혔다'는 이메일이 통째로 실린 적은 거의 없어요.
빌라니의 책에는 그게 들어 있어요.
2012년, 빌라니는 『살아있는 정리(Théorème vivant)』를 펴냈어요.
필즈상을 안긴 그 정리를 증명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책이에요.
공동 연구자 클레망 무오와 주고받은 이메일, 계속 막히던 골목들, 새벽까지 오류를 잡지 못한 날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수학자들은 보통 그런 걸 보여주지 않아요.
결과만 깔끔하게 정돈해서 논문으로 내고, 수백 번 헤맨 흔적은 지워버리죠.
셰프가 레시피북에 '처음에 세 번 망쳤다'는 메모를 절대 남기지 않는 것처럼요.
빌라니는 그 무대 뒤를 통째로 공개해버렸어요.
수학이 깔끔한 깨달음이 아니라 헤매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증거를 들고 보여준 거예요.
그 책은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수학자가 쓴 책이 수학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 팔린 거예요.
빌라니는 19세기 복장으로 21세기를 걷듯이, 수학의 언어로 수학 바깥의 독자들을 끌어당겼어요.
필즈상을 받은 7년 뒤, 빌라니는 칠판이 아니라 의회 연단에 섰어요.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이 창당한 앙 마르슈(La République En Marche)에 합류해서예요.
앙 마르슈는 기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새 정치를 표방하며 그해 프랑스 정계를 흔든 신생 정당이에요.
빌라니는 파리 남쪽 에손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어요.
노벨상 받은 과학자가 갑자기 시의원 선거에 나간 것과 비슷한 장면이에요.
가장 추상적인 학문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가장 구체적인 진흙탕으로 걸어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정치는 수학처럼 증명이 통하는 세계가 아니었어요.
2020년 파리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당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탈당했어요.
본선에서 약 8% 득표에 그쳐 탈락했고, 2022년 의원 재선도 실패했어요.
혼돈을 질서로 수렴시키는 수식은 찾아냈지만, 정치의 혼돈 앞에서는 수식이 없었어요.
가장 추상적인 학문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가장 진흙탕 같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그리고 수학으로 깔끔하게 돌아오지도 못했어요.
은제 거미 브로치는 지금도 그의 가슴에 달려 있을 텐데, 그 브로치가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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