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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32년 뒤 노벨상을 안길 발표를 끝낸 매클린톡이 단상에서 내려왔을 때, 박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어요.
1951년, 미국 유전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최대 학회인 콜드 스프링 하버 심포지엄에서였어요.
그녀가 발표한 내용은 이거였어요.
옥수수 알갱이가 자꾸 색이 바뀌는 이유는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서 자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라고요.
유전자가 '점프'한다는 주장이었어요.
오늘날엔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이지만, 당시엔 황당한 소리에 가까웠어요.
매클린톡 본인이 남긴 회고에 따르면, 발표 후 청중의 반응은 "당혹과 적의"였어요.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동료 전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본 순간을 떠올리면 돼요. 그게 바로 1951년 그 발표장의 분위기였어요.

동료들이 인정해주지 않자 매클린톡은 동료를 갈아치운 게 아니라, 학회 자체를 떠났어요.
1953년경부터 그녀는 자신의 핵심 연구를 주류 저널에 거의 발표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작은 실험실과 옥수수밭으로 돌아갔어요.
콜드 스프링 하버는 미국 동부 해안에 위치한 생물학 연구 기지예요.
그녀는 거기서 혼자, 30년을 보냈어요.
가장 큰 발견을 한 직후에 학계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가장 외곽으로 나간 거예요.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프로젝트를 사이드로 묵묵히 끌고 가는 사람처럼요.
그런데 매클린톡은 그걸 30년 동안 했어요.

매클린톡이 유전자가 움직인다고 말한 시점에, 세상은 유전자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조차 합의하지 못했어요.
그녀가 옥수수의 점핑 유전자를 정리하기 시작한 건 1944년 무렵이에요.
그런데 같은 해에 에이버리 실험이 막 발표됐어요.
에이버리 실험은 유전 정보가 단백질이 아니라 DNA에 있다는 걸 처음 증명한 실험이에요.
그 전까지는 '유전 정보가 DNA에 있는지 단백질에 있는지'조차 과학계에서 결론을 못 낸 상태였어요.
그리고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건 1953년에야였어요.
이중나선 구조란 DNA가 두 가닥이 꼬인 나선형으로 이루어진 구조로, 이걸 알아야 비로소 유전 정보가 어떻게 저장되고 복제되는지 설명할 수 있어요.
즉, 매클린톡은 유전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는지도 몰랐던 시대에, 그 정보가 자리를 옮긴다고 주장한 거예요.
스마트폰이 존재하기 전에 "앱은 기기 사이를 자동으로 옮겨다닐 거야"라고 말한 것과 같아요.
청중 입장에서 황당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사실이었다는 거예요.

매클린톡이 81세에 받은 전화는, 32년 전 그녀를 비웃었던 학계가 거는 사과 전화에 가까웠어요.
1983년, 그녀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으로 받았어요.
단독 수상이었어요. 옆에 아무도 없었어요.
노벨 생리의학상을 단독으로 받은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됐어요.
32년 전 그녀를 침묵으로 맞았던 같은 학계가, 이번엔 그녀를 혼자 호명했어요.
매클린톡은 수상 후 이렇게 말했어요.
"오래 기다린 게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신경 쓰지 않고 일할 수 있었으니까요."
30년을 혼자 옥수수밭에서 버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에요.
30년 전 회사가 폐기한 제안서가 30년 뒤 회사를 살린 핵심 전략으로 다시 호명되는 장면과 같아요.
그때 그 제안서를 책상 서랍에서 꺼낸 사람이 매클린톡이었고, 서랍 안에서 기다린 건 그녀의 옥수수밭 데이터였어요.
32년 전 그 침묵 속에서, 그녀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30년을 혼자 옥수수밭에서 버티는 건, 고집이 아니라 무모함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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