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53년 1월 30일, 프랭클린이 1년 넘게 찍어온 사진 한 장이 그녀 모르게 다른 연구실로 건너갔어요.
그 사진의 이름은 사진 51(Photo 51)이에요.
DNA 분자에 X선을 쏘면 분자 구조에 따라 필름에 독특한 무늬가 찍혀요.
마치 물건에 빛을 비춰 그림자 모양으로 내부 생김새를 알아내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분자 구조를 사진 한 장으로 파악하는 기술이에요.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런던 킹스칼리지 연구실에서 수백 번의 실험을 반복하며 그 사진을 완성했어요.
1년 넘게 공들여 쌓아온 데이터였어요.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만큼 신중하게 관리하던 미발표 자료였고요.
그런데 같은 건물에서 일하던 동료 모리스 윌킨스가 프랭클린의 허락도 없이 그 사진을 케임브리지 대학의 제임스 왓슨에게 보여줬어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 내부 미공개 연구 자료를 옆 팀 동료가 경쟁사 직원에게 슬쩍 꺼내 보여준 거예요.
1년이 넘는 시간이, 단 몇 분 만에 건너간 셈이에요.
왓슨은 그 사진을 본 순간 이중나선 구조가 머릿속에서 완성됐다고, 자서전에 직접 적었어요.
훗날 왓슨이 쓴 회고록 『이중나선(The Double Helix)』에는 그 장면이 이렇게 묘사돼요.
"입이 벌어지고 맥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몇 달째 풀리지 않던 퍼즐이 사진 한 장 앞에서 순식간에 맞춰진 거예요.
두 달 뒤인 1953년 4월 25일,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DNA 이중나선 구조 논문을 발표했어요.
이중나선은 DNA가 정보를 저장하고 복제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구조예요.
생명 복제의 원리 자체를 밝혀낸 발견이에요.
그런데 논문 본문 어디에도 프랭클린의 사진이 결정적 단서였다는 말은 거의 없었어요.
프랭클린은 같은 호 옆 페이지에 자기 데이터 논문을 보조 자료처럼 게재해야 했어요.
회의에서 내 데이터로 만든 결론을 다른 사람이 발표하고, 나는 그 발표의 각주 정도로 남는 상황이에요.
프랭클린이 죽었을 때, 그녀는 자기 사진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생물학적 발견에 어떻게 쓰였는지 끝내 알지 못했어요.
1958년 4월 16일,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37세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수년간 X선 회절 실험을 하며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어요.
연구를 위해 몸을 쏟아부은 사람이, 그 연구 도구에 의해 서서히 몸이 망가진 거예요.
죽기 전 마지막 2년 동안 프랭클린은 버크벡 칼리지에서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의 RNA 구조를 연구하며 과학계에서 새롭게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킹스칼리지에서 쫓겨나듯 연구실을 옮긴 뒤에도, 멈추지 않은 거예요.
결국 자신의 사진 51이 이중나선 발견에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자기 손을 떠났는지는 온전히 알지 못한 채 눈을 감았어요.
평생 가장 중요한 일을 해놓고, 그게 어떻게 쓰였는지 모르고 떠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1962년 12월 10일 스톡홀름 무대에 올라간 사람은 세 남자였어요.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어요.
그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왓슨, 크릭,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허락도 없이 경쟁자에게 넘겼던 바로 그 동료 모리스 윌킨스에게 공동 수여됐어요.
노벨상은 규정상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수여할 수 있어요.
프랭클린은 이미 4년 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윌킨스의 수상 연설에서 프랭클린의 이름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어요.
사진을 넘긴 사람은 무대 위에 올랐고, 사진을 찍은 사람은 그 자리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어요.
이미 죽었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두고 누군가는 "규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규정은 애초에 공평한 출발선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어요.
1953년 1월 30일, 단 몇 분 사이에 이미 기울어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