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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43년 미 해군은 그레이스 호퍼를 세 번 거절했어요.
너무 늙었고, 너무 말랐고, 수학자로서 후방에 있는 게 낫다는 이유였어요.
호퍼는 당시 뉴욕 명문 사립대인 바사르 대학 수학과 부교수였어요.
정년이 보장되는 종신 교수 자리에 오르기 직전이었죠.
그 안전한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해군 지원서를 냈어요.
해군의 답은 "안 됩니다"였어요.
36세는 여성 예비역 WAVES, 그러니까 전시 여성 해군 복무단의 입대 나이 기준을 초과했고, 체중 47킬로그램은 신장 168센티미터 기준 최소 체중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그래도 호퍼는 특례 면제를 신청해 결국 입대 허가를 받아냈어요.
배치받은 곳은 하버드 대학이었어요.
Mark I, 미국 해군이 탄도 계산용으로 운용하던 거대한 기계식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맡았어요.
자기를 세 번 거절한 조직에 특례로 들어간 수학 교수의 전쟁이 그렇게 시작됐어요.
컴퓨터에 있던 최초의 버그는 비유가 아니었어요.
진짜 나방 한 마리였어요.
1947년 9월 9일, 하버드에서 Mark II 컴퓨터가 이상한 오류를 냈어요.
Mark II는 전기 신호를 릴레이, 즉 물리적으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스위치들로 전달하던 초기 컴퓨터예요.
팀원이 70번 릴레이를 열어보니 나방 한 마리가 끼어 죽어 있었어요.
그들은 나방을 핀셋으로 꺼내 작업 일지에 테이프로 붙였어요.
그 옆에 이렇게 적었죠. "First actual case of bug being found." 실제 버그가 발견된 최초의 사례라고요.
이 일지는 지금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어요.
카카오톡에서 "버그 났다"고 말할 때, 그 단어가 진짜 곤충 시체 한 마리에서 굳어진 표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1947년 그날, 일지에 테이프로 붙여진 나방 한 마리가 전 세계 개발자들이 매일 쓰는 단어로 남았어요.
1950년대 동료들은 호퍼에게 말했어요.
"컴퓨터는 절대로 자기 자신의 프로그램을 쓸 수 없어요. 숫자만 처리할 뿐이에요."
당시 프로그래밍은 기계어, 즉 0과 1의 조합을 직접 입력하는 작업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문자 하나를 보낼 때마다 이진수 수십 개를 손으로 입력해야 하는 것과 같아요.
전문 엔지니어도 단순한 계산 하나에 몇 시간씩 걸리던 시절이었어요.
호퍼는 생각을 바꿨어요.
'사람이 영어처럼 쓴 명령어를 기계가 알아서 0과 1로 번역해주면 어떨까?'
그 생각이 1952년 A-0 시스템으로 완성됐어요.
A-0 시스템은 세계 최초의 컴파일러예요.
컴파일러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쓴 코드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기계어로 바꿔주는 번역기예요.
영어 문장으로 편지를 쓰면 컴퓨터가 알아서 기계어로 옮겨주는 통역사를 처음 만든 것과 같아요.
호퍼는 이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켜 1959년 COBOL의 토대를 만들었어요.
COBOL은 영어 문장처럼 비즈니스 코드를 짤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예요.
오늘날 파이썬, 자바, 모든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의 조상이 됐어요.
개발자들이 if, for, print 같은 영어 명령어로 코드를 짤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혼자 밀어붙인 그 수학 교수 덕분이에요.
1986년 79세로 군복을 벗었을 때, 그녀는 미국 해군 전체에서 가장 늙은 현역 장교였어요.
입대할 때 "너무 늙었다"며 거절당한 사람이 결국 가장 늦게까지 남은 사람이 됐어요.
1966년 60세 정년에 강제 전역 통보를 받았어요.
하지만 7개월 만에 해군이 다시 그녀를 소환했어요.
컴퓨터 표준화 작업에 호퍼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그 뒤로 해마다 근무 연장을 받았어요.
1986년, 79세가 되어서야 마지막으로 군복을 벗었어요.
처음 입대할 때로부터 40년이 넘는 시간이었어요.
호퍼의 펜타곤 사무실 책상에는 거꾸로 도는 시계가 놓여 있었어요.
바늘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시계였는데,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 답했어요.
"시계는 원래 이 방향으로도 잘 돌아요."
처음엔 나이 때문에 거절당했고, 마지막엔 나이 때문에 다시 불렸어요.
관성을 거부한 사람이 결국 가장 오래 남았어요.
그 역설이 그녀가 남긴 것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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