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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세기 가장 빠른 컴퓨터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이름은 존 폰 노이만이었어요.
1940년대, 펜실베이니아대학교가 세계 최초의 범용 전자 컴퓨터 ENIAC을 만들었을 때 이야기예요.
ENIAC은 진공관 18,000개로 만든 거대한 기계였는데, 폰 노이만과 같은 계산을 두고 대결을 벌였어요.
결과는 폰 노이만의 승리였어요. 종이와 머리만으로.
그는 8살에 8자리 숫자 나눗셈을 암산했고, 한 번 읽은 책의 페이지를 통째로 외워 수십 년 뒤에도 그대로 인용했다고 전기 작가 노먼 맥레이가 기록했어요.
게임이론, 현대 컴퓨터 구조인 폰 노이만 구조,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까지 여러 분야를 동시에 창시한 사람이에요.
같은 시대 아인슈타인이 그를 두고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라 평했을 정도였어요.

히로시마 상공 580m, 폭탄이 터진 그 정확한 높이를 결정한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한 명의 수학자였어요.
폰 노이만은 1943년부터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맨해튼 프로젝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원자폭탄을 극비로 개발하기 위해 진행한 계획이에요.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최적 폭발 고도를 580m 부근으로 직접 계산해 제시했어요.
지상에서 터뜨리면 폭발 에너지가 땅으로 흡수돼요.
하지만 공중 580m에서 터뜨리면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피해 반경이 최대가 돼요.
엑셀에 숫자를 넣어 "여기서 터뜨려야 가장 효과적"이라는 보고서를 올린 것과 같은데, 그 결과로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종전 후에도 그는 소련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공개적으로 주장했어요.
냉전 시대 핵전쟁의 광기를 풍자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주인공이 폰 노이만을 모델로 했다는 말이 따라다녔어요.
인류의 가장 차가운 계산 한 줄이, 도시 두 곳을 일순간에 지웠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차가웠던 두뇌가, 53세의 봄에 가장 뜨겁게 무너졌어요.
1955년, 폰 노이만은 골수암 진단을 받았어요.
핵실험 현장에 직접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방사선 피폭이 원인으로 추정돼요.
그는 워싱턴의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했어요.
그런데 미 공군이 그의 병실 앞에 군인을 배치해 24시간 감시했어요.
진통제와 통증으로 의식이 흐려진 그가 핵 기밀을 헛소리로 누설할까 봐서였어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아는 두뇌가, 이제는 그 비밀조차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예요.
동료 수학자 헤르만 골드스타인은 이렇게 회고했어요.
"한 번도 두려움을 보인 적 없던 사람이 죽음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어요."
평생 가장 냉정하고 침착했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죽음을 거부했어요.

20세기 가장 합리적이었던 두뇌가, 마지막에 선택한 답은 신앙이었어요.
1957년 2월 8일, 폰 노이만은 가톨릭 사제 안셀름 스트리트마터를 자신의 병실로 불렀어요.
평생 종교에 무관심했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합리주의자로 통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는 사제에게 파스칼의 내기를 인용하며 신앙을 받아들였어요.
파스칼의 내기는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제안한 확률 논증이에요.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살았는데 신이 없다면? 잃는 게 없어요. 신이 존재하는데 믿지 않았다면? 전부를 잃는 거예요."
결국, 신이 존재할 확률에 거는 것이 수학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논리예요.
임종 직전까지 그는 영성체와 고해성사를 받았어요.
평생 복권은 수학적으로 손해라고 계산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가장 큰 복권을 산 셈이에요.
게임이론으로 인간의 모든 선택을 확률로 설명하던 그가, 자신의 마지막 선택만은 수식 없이 했어요.
그 선택이 진정한 믿음이었는지, 마지막 계산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너무 무서웠던 건지.
그 답은 폰 노이만만 알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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