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어느 도시에서도 3년 이상 머무른 적이 없었어요.
1995년부터 2014년까지, 그녀는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를 시작으로 미국 록펠러대, 뉴욕대, 멤피스, 오스트리아 빈, 스웨덴 우메오, 독일 하노버까지 5개국 9개 기관을 떠돌았어요.
25년 직장 생활 동안 평균 3년마다 새 도시로 짐을 쌌다는 뜻이에요.
보통 과학자는 한 연구실에 정착해서 같은 주제를 평생 파요.
그래야 깊이가 생기고, 학계에서 입지도 굳어지거든요.
하지만 샤르팡티에는 정반대로 살았어요.
오늘날로 치면 3년마다 회사를 옮기는 직장인이에요.
그런데 그게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매번 새 나라, 새 언어, 새 연구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결국 그 유랑의 끝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꿀 발견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CRISPR의 핵심 단서는 하버드도, MIT도 아닌 스웨덴 북부의 한 작은 대학에서 발견됐어요.
CRISPR은 DNA를 정밀하게 잘라내고 수정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 도구예요.
마치 문서에서 특정 단어를 찾아 삭제하거나 다른 말로 바꾸는 '찾기/바꾸기' 기능처럼요.
우메오는 스톡홀름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 인구 12만 명의 도시예요.
샤르팡티에는 그곳에서 tracrRNA라는 분자를 발견하고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 발표했어요.
tracrRNA는 CRISPR이 DNA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분자예요. 내비게이션 없이는 목적지를 찾을 수 없듯이, 이 분자 없이는 CRISPR이 작동하지 않아요.
무명 동네 카페에서 개발한 레시피가 전 세계 스타벅스 메뉴가 된 격이에요.
세계 최고 명문대가 아닌, 북극권 부근의 조용한 도시에서 인류 최강의 유전자 편집 도구로 이어진 발견이 나온 거예요.
그리고 그 발견이 다음 만남의 씨앗이 됐어요.
두 사람의 노벨상 공동 수상은 2011년 산후안의 한 골목길에서 시작됐어요.
그해 3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미국 미생물학회가 열렸어요.
샤르팡티에는 그 학회에서 미국의 생화학자 제니퍼 다우드나에게 직접 다가가 협업을 제안했어요.
두 사람은 회의실이 아니라 산후안 구도심의 좁은 골목을 함께 걸으며 공동 연구를 결정했어요.
학회 점심 시간에 처음 만난 사람과 동네를 산책하다 평생의 연구 파트너가 된 셈이에요.
그리고 딱 1년 뒤인 2012년, 두 사람의 공동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렸어요.
《사이언스》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 저널 중 하나예요.
그 논문이 CRISPR-Cas9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세상에 처음 명확하게 보여줬어요.
결국 학회 골목길의 즉흥 산책 하나가, 생명과학의 역사를 바꾼 거예요.
노벨상 수상 직후, 샤르팡티에는 거의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어요.
2020년,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는 CRISPR-Cas9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어요.
노벨화학상 119년 역사에서 여성 두 명이 단둘이 공동 수상한 첫 번째 사례였어요.
다우드나는 자서전 《크리스퍼가 온다》를 출간하고 다수 인터뷰에 응했어요.
하지만 샤르팡티에는 베를린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로 돌아가 조용히 연구를 계속했어요.
같이 우승한 두 선수 중 한 명만 시상대 인터뷰에 응하고, 다른 한 명은 라커룸으로 사라진 상황이에요.
9개 연구실을 떠돌고, 북극권 부근의 외진 대학에서 홀로 단서를 붙들고, 노벨상을 받고도 카메라보다 실험실을 택한 사람이에요.
그녀가 25년간 짐을 싼 건 어쩌면 정착할 곳을 찾아서가 아니라, 답을 찾아서였을 거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베를린 어딘가에서 또 다른 질문을 붙들고 있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