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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유전자 편집 도구를 만든 사람은, 그 도구를 완성한 지 3년 만에 직접 사용을 멈추라고 호소했어요.
새 아이폰을 출시한 CEO가 발표 다음 날 "이거 사지 마세요"라고 말한 상황과 같아요.
보통 발명가는 자기 발명을 더 쓰라고 홍보하잖아요.
그런데 제니퍼 다우드나는 정반대로 했어요.
다우드나는 2012년 프랑스 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함께 CRISPR-Cas9을 공동 개발했어요.
CRISPR-Cas9은 'DNA 가위'예요.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를 원하는 위치에서 잘라내고, 다른 유전자를 붙여 넣을 수 있는 도구예요.
그리고 2015년, 다우드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 서한을 발표했어요.
내용은 하나였어요.
"CRISPR를 이용한 인간 배아 편집을 즉시 중단하라."
그녀가 직접 만든 도구였어요.
그리고 그 도구가 너무 빠르게, 너무 무분별하게 인간에게 적용될까 봐 두려웠던 거예요.
이미 여러 연구실에서 인간 배아에 CRISPR를 적용하는 실험이 시작되고 있었거든요.
한 과학자의 윤리 활동을 시작하게 만든 건 학술 토론이 아니라, 돼지 얼굴 히틀러가 등장한 한 편의 악몽이었어요.
다우드나는 자서전 《크리스퍼가 온다》에서 2014년에 꾼 꿈을 직접 고백했어요.
꿈속에서 히틀러가 돼지 얼굴을 한 채 그녀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만든 도구, 사용법을 알려줘."
회사 비밀번호를 만든 개발자가 어느 날 밤 "나쁜 사람이 이걸 쓰면 어쩌지"하는 꿈을 꾸고 다음 날 보안팀에 달려간 격이에요.
그런데 그 발명이 DNA를 바꾸는 도구라면, 그 꿈은 훨씬 더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이 악몽 이후 다우드나는 생물 윤리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어요.
《크리스퍼가 온다》는 CRISPR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책이 아니에요.
자신이 만든 도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두려운지를 직접 쓴 고백록이에요.
과학자가 논문이 아니라 악몽 때문에 행동을 바꿨다는 건 사실 중요한 신호예요.
머리로 계산한 게 아니라, 뱃속 깊은 곳에서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거든요.
다우드나가 우려했던 그 일은, 그녀가 경고한 지 정확히 3년 만에 중국의 한 실험실에서 실제로 일어났어요.
2018년 11월,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는 발표를 했어요.
CRISPR로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여아 '룰루'와 '나나'를 출생시켰다는 내용이었어요.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저항성을 갖도록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직접 바꿨다는 거예요.
"이 칼은 위험하니 쓰지 마세요"라고 만든 사람이 직접 경고했는데, 누군가가 그걸 들고 수술실에 들어간 격이에요.
그것도 아직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다루는 수술실에요.
세계 과학계는 즉각 비판했어요.
허젠쿠이의 실험은 HIV 저항성을 얻기 위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유전자를 건드린 것이었어요.
결국 그는 중국 당국에 의해 3년 징역형을 받았어요.
하지만 룰루와 나나, 두 아이는 이미 태어났어요.
편집된 유전자를 갖고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살고 있어요.
다우드나가 멈추라고 외쳤던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됐어요.
노벨화학상이 만들어진 1901년부터 2020년까지 119년 동안, 여성 두 명만 공동 수상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다우드나가 그 첫 번째였어요.
2020년, 다우드나는 함께 CRISPR-Cas9을 개발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어요.
수상 이유는 명확했어요.
"유전체 편집이라는 방법을 개발한 공로."
119년간 여성 과학자는 거의 항상 남성 동료와 함께 수상하거나, 아예 수상자 명단에서 빠졌어요.
남성이 이름을 올리는 동안 같은 연구를 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여럿 있어요.
그런 역사 위에서 두 여성이 단둘이 수상한 건, 과학계가 무언가를 고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시상식 날 다우드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 상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에요. 과학이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이에요."
그녀는 도구를 만들었어요.
그 도구를 두려워했어요.
그리고 세상은 그 두려움까지 포함해, 그녀의 공로를 인정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CRISPR 연구는 암 치료와 유전병 치료에 쓰이고 있어요.
그녀가 만든 가위가 어떤 실을 자를지는, 결국 우리가 결정해야 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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