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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86년, 영국 여왕이 직접 내리는 칭호를 그는 호칭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돌려보냈어요.
기사 작위(Knighthood)는 영국에서 최고 명예 중 하나예요.
받으면 이름 앞에 'Sir'가 붙고, 학자라면 평생의 업적을 나라가 공식 인정하는 순간이에요.
그런데 프레데릭 생어는 이걸 거절했어요.
이유가 걸작이에요.
그의 답은 이랬어요. "Sir라고 불리고 싶지 않아서요(I didn't want to be called Sir)."
회사에서 임원 자리를 제안받았는데 "그냥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서" 거절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생어예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이 한 말이에요.
그것도 화학상만 두 번, 이건 인류 역사상 단 한 명뿐인 기록이에요.
하지만 그에게 호칭은 연구보다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한 사람이 노벨화학상을 두 번 받은 일은 100년 노벨 역사에서 단 한 번, 생어뿐이에요.
비교를 하나 들면 이해가 빨라요.
라이너스 폴링이라는 화학자도 노벨상을 두 번 받았지만, 그건 화학상과 평화상이었어요.
생어는 화학상만 두 번 받은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것도 무려 22년 간격으로요.
첫 번째는 1958년이에요.
생어는 인슐린이라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처음으로 밝혔어요.
아미노산 서열이란 단백질을 이루는 재료들이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지를 말해요. 당시에는 단백질이 고정된 구조를 가진다는 것조차 증명이 안 된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생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1980년, 이번엔 DNA 분야에서 두 번째 노벨화학상을 받았어요.
생어 시퀀싱이라고 불리는 DNA 염기서열 분석법을 개발한 거예요. DNA 염기서열이란 유전 정보가 어떤 코드로 배열되어 있는지를 읽어내는 방법이에요.
한 가수가 발라드로 1위를 한 뒤, 22년 후 힙합으로 또다시 1위를 한 격이에요.
지금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해독할 때, 암세포의 DNA를 분석할 때 생어 시퀀싱의 원리가 들어가요.

동기들이 군복을 입고 떠날 때, 생어는 실험실 가운을 벗지 않았어요.
1939년, 생어가 케임브리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던 해에 2차 세계대전이 터졌어요.
영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전쟁에 동원됐어요.
레이더를 개발하거나, 적군의 암호를 해독하거나, 심지어 원자폭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생어는 달랐어요.
그는 퀘이커(Quaker) 가정에서 자랐어요.
퀘이커는 어떤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는 평화주의를 핵심으로 삼는 기독교 종파예요.
생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등록하고 실험실에 남았어요.
모두가 전쟁을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에 뛰어들 때, 그가 하던 일은 양 한 마리분의 인슐린을 들고 아미노산을 한 칸씩 확인하는 작업이었어요.
모두가 코로나 백신 개발에 뛰어들 때 혼자 평범한 단백질 책상 연구를 계속한 연구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생어의 모습이에요.
그 조용한 작업이 결국 1958년 첫 번째 노벨화학상이 됐어요.

인류의 DNA를 처음 읽은 사람은, 자기 인생만큼은 끝까지 쓰지 않았어요.
생어는 1983년 65세에 은퇴했어요.
그리고 케임브리지 인근 자택 정원에서 채소와 꽃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이후 30년을 그렇게 살았어요.
출판사들이 줄을 섰어요.
노벨화학상을 두 번 받은 과학자의 자서전이라면 당연히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생어는 모두 거절하며 자신을 이렇게 불렀어요. "그냥 실험실에서 만지작거린 사람이에요(just a chap who messed about in a lab)."
지금 당신이 스마트폰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유전자 검사, 암 진단 기술, 바이러스 분석의 기반이 생어 시퀀싱이에요.
그걸 만든 사람이 본인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았어요.
2013년, 생어는 95세로 잠든 채 세상을 떠났어요.
기사 작위를 거절했고, 자서전을 거절했고, 영광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 했던 그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되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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