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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DNA 구조를 푼 두 사람 중 한 명은, 그때까지 박사학위조차 없었어요.
프랜시스 크릭은 원래 물리학자였어요.
런던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막 발을 들였을 때, 2차 세계대전이 터졌어요.
연구는 중단됐고, 그는 영국 해군에서 자성기뢰(자기장으로 배를 폭발시키는 수중 폭탄)를 설계하는 일을 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물리학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1949년에야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 문을 두드렸는데, 그때 나이가 31살이었어요.
회사에서 10년 다니던 부서를 접고 완전히 다른 부서로 옮긴 셈이에요.
그리고 박사학위는 DNA 구조를 발견한 뒤인 1954년에 받았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생물학 발견을 한 사람이 정작 그때까지 생물학 박사가 아니었던 거예요.
노벨상도 박사학위도 늦게 왔는데, 발견은 먼저 왔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분자생물학 발표는 학회가 아닌 동네 펍에서 시작됐어요.
1953년 2월 28일 토요일 정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은 모형 조립을 막 끝내고 연구소 근처 펍 The Eagle로 뛰어들어갔어요.
단골 손님들이 밥 먹고 있는 그 자리에서, 크릭이 큰 소리로 외쳤어요.
"We have found the secret of life. 우리가 생명의 비밀을 찾았어!"
그 논문은 같은 해 4월 25일 Nature지에 실렸는데, 길이가 단 900단어였어요.
오늘날 대학원생 보고서보다 짧아요.
하지만 그 900단어가 현대 분자생물학 전체의 시작점이에요.
한 가지 더 있어요.
이중나선 모형의 결정적 단서는 동료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찍은 X선 사진 'Photo 51'이었어요.
그런데 프랭클린은 자기 사진이 크릭과 왓슨에게 보여졌다는 사실을 당시 알지 못했어요.
크릭은 노벨상을 받기 직전, 케임브리지의 한 칼리지에서 채플 한 동 때문에 사임했어요.
1961년, 그는 처칠 칼리지 펠로우로 임명됐어요.
처칠 칼리지는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따 새로 세운, 과학과 공학 중심의 대학이에요.
그 콘셉트가 크릭에게 딱 맞았죠.
그런데 이듬해 학교 측이 캠퍼스 안에 예배당을 짓겠다고 발표했어요.
크릭은 즉시 사임서를 냈어요.
"과학 중심 대학을 표방하면서 종교 시설을 짓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아요"라는 항의 편지도 함께 보냈어요.
그리고 딱 1년 뒤인 1962년, 그는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어요.
사임하지 않았다면 재직 중에 노벨상을 받는 더 극적인 그림이 됐을 텐데요.
크릭에게는 그것보다 원칙이 먼저였던 거예요.
생명의 비밀을 풀었다고 외친 그 남자는, 만년에 그 비밀이 지구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1973년, 크릭은 동료 레슬리 오겔과 함께 학술지 Icarus에 논문 한 편을 발표했어요.
제목은 'Directed Panspermia(지향성 패스퍼미아)', 번역하면 '의도적으로 방향을 잡은 씨 뿌리기'예요.
주장은 간단했어요. "지구 생명체는 외계 문명이 우주선에 실어 보낸 미생물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
패스퍼미아는 원래 '생명의 씨앗이 우주를 떠돌다 지구에 떨어졌다'는 가설이에요.
크릭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우연히 날아온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냈다는 거예요.
오늘로 치면, "우리 회사 창업 매뉴얼은 사실 외계 기업이 작성해서 우리한테 넘겨준 거예요"를 진지하게 주장하는 셈이에요.
1981년엔 Life Itself라는 책까지 펴내며 이 가설을 정식으로 옹호했어요.
그는 왜 이런 결론에 이르렀을까요.
크릭의 답은 이랬어요. "생명이 지구에서 자연발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38억 년 전 지구가 생겼고, 불과 수억 년 뒤에 생명이 나타났거든요. 그 복잡한 분자 기계가 우연히 그렇게 빨리 만들어질 확률은 너무 낮아요."
DNA를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 정작 그 기원에서는 '이건 지구가 만들어낸 게 아닐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이후 크릭은 분야를 또 한 번 바꿔 인간의 의식 연구로 넘어갔어요. 뇌 속에서 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신경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작업이에요.
2004년 8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여전히 그 질문을 붙들고 있었어요.
물리학자로 시작해 생물학의 가장 큰 비밀을 풀고, 그 비밀을 다시 우주로 돌려놓고, 마지막엔 인간의 의식을 파고든 사람.
크릭에게 분야의 경계는 애초에 별 의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가 다음 질문을 택한 기준은 언제나 하나였을 거예요. "가장 큰 미스터리가 어디 있는가?"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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