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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양 철학의 첫 장면은 위대한 발견이 아니라 어이없는 추락이었어요.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걷던 탈레스가 발밑 우물을 못 보고 그대로 풍덩 빠진 거예요.
곁에 있던 트라키아 출신 하녀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한마디를 던졌어요.
"하늘은 그렇게 잘 보면서, 발밑은 왜 못 봐요?"
이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은 플라톤이에요.
그의 대화록 『테아이테토스』 174a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BC 6세기를 살았던 사람의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진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게 망신 당한 장면이라는 게 더 재밌어요.
서양 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우물에 빠진 거라는 점, 뭔가 딱 맞지 않나요?
위대한 사람들의 첫 장면이 꼭 장엄할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비웃음에 대한 그의 답은 한 해 만에 도시 최고 부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 시대에도 "공부만 하지 말고 돈 좀 벌어봐"라는 잔소리는 있었어요.
사람들이 탈레스를 보며 놀렸거든요.
"철학이 뭐가 좋아? 그걸로 돈은 벌 수 있어?"
탈레스는 반박하는 대신 직접 보여주기로 했어요.
별을 관측해서 다음 해에 올리브 풍작이 올 것을 예측하고, 겨울이 되자 조용히 움직였어요.
밀레토스와 키오스, 두 도시의 올리브 압착기를 전부 헐값에 임차한 거예요.
올리브 압착기는 올리브유를 짜는 도구예요.
수확철에 이게 없으면 올리브를 따도 기름을 뽑을 수가 없어요.
지금으로 치면 추석 직전에 전국 택배 창고를 몽땅 선점해버린 셈이에요.
예상대로 풍작이 왔어요.
농민들은 압착기가 없으니 탈레스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탈레스는 비싼 값에 되빌려주고 한 해 만에 도시 최고 부자가 됐어요.
그리고 다시 철학으로 돌아갔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 이 이야기를 기록하며 덧붙인 해석이 있어요.
탈레스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딱 하나였다고. "하려면 할 수 있어. 난 그냥 안 하는 거야."
BC 585년 5월 28일 한낮, 5년째 싸우던 두 나라 군대 위로 갑자기 어둠이 내렸어요.
리디아와 메디아 두 나라는 할리스 강 유역에서 5년 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었어요.
리디아는 지금의 터키 서쪽, 메디아는 지금의 이란 북서쪽에 있던 고대 왕국이에요.
전투가 한창이던 그날, 갑자기 한낮에 해가 사라졌어요.
양쪽 군인들은 그 자리에서 멈췄어요.
신이 전쟁을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한 거예요.
무기를 내리고 즉시 휴전 조약을 맺었어요.
반전은 탈레스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는 그 해에 일식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해 뒀어요.
망원경도, 미적분도 없던 시대에 별의 움직임만으로 이걸 맞힌 거예요.
헤로도토스가 『역사』에 이 이야기를 남겼는데, 이 사건은 역사학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BC 585년 5월 28일"은 고대 역사에서 날짜가 정확히 기록된 최초의 사건으로 꼽혀요.
현대 천문학으로 역산했더니, 그 일식이 실제로 있었다는 게 확인됐거든요.
탈레스의 답은 틀렸어요.
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 방식이 인류의 사고를 바꿨어요.
BC 6세기는 신화의 시대였어요.
천둥이 치면 제우스가 화난 거고, 바다가 거칠어지면 포세이돈이 날뛰는 거라고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탈레스는 거기서 처음으로 다른 질문을 꺼냈어요.
"신 말고, 이 세상이 뭐로 만들어졌어?"
그의 답은 물이었어요.
씨앗에는 수분이 있고,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수분을 필요로 한다는 관찰에서 나온 결론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이 답을 기록하며, 왜 물인지도 함께 설명해요.
답 자체는 틀렸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의 방식이에요.
"신이 그랬으니까"가 아니라 "원리가 뭐야?"라고 묻기 시작한 것, 그게 과학과 철학의 진짜 출발점이에요.
모두가 "이건 신의 뜻이야"라고 말하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아니, 원리부터 따져보자"고 한 사람.
탈레스가 우물에 빠진 그 밤, 하녀의 비웃음을 들으면서도 계속 하늘을 올려다본 이유가 거기 있지 않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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