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300년 동안 철학자들은 손을 들어볼 생각을 못 했어요.
1939년, G.E. 무어가 양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영국학회 강연장에서 무어는 오른손을 번쩍 들었어요.
"여기 손 하나가 있습니다. 여기 또 다른 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두 개의 외부 사물이 존재합니다."
왜 이게 대단한 걸까요.
데카르트는 17세기 프랑스 철학자로, "내가 지금 보는 세계가 진짜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꿈일 수도 있고, 악마가 만든 환상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 질문이 300년 동안 유럽 철학계를 지배했어요.
그런데 무어는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것으로 이 논쟁을 끝냈어요.
친구가 "이 사과 진짜 있는 거 맞아?"라고 진지하게 물을 때 "여기 사과잖아, 봐"라고 답하는 격이에요.
철학자들은 너무 깊이 생각한 나머지, 가장 당연한 답을 못 봤던 거예요.

200쪽짜리 윤리학 책의 결론은 한 줄이었어요.
善(good)은 정의할 수 없다.
1903년, 무어는 Principia Ethica(윤리학 원리)를 펴냈어요.
"좋다는 게 무엇인가"를 200페이지에 걸쳐 파고들었는데, 결론이 황당해요.
"善은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단순한 것이에요."
무어는 그 전까지 나온 모든 답을 하나씩 깨부쉈어요.
"善은 즐거움이다"라고? 즐겁지 않아도 좋은 것이 있잖아요.
"善은 진화에 유리한 것이다"라고? 그건 생물학이지 윤리가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자연의 사실에서 도덕의 가치를 끌어내려는 시도를 무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이름 붙였어요.
요리책을 200쪽 두껍게 썼는데 마지막 장에서 "맛있음이 무엇인지는 끝내 말할 수 없다"로 끝난 격이에요.
하지만 이 결론이 오히려 혁명이었어요.
도덕을 과학처럼 측정하고 정의하려던 시대에, 무어는 "그게 안 돼요"라고 정면으로 맞섰거든요.

무어 본인은 평생 단조로운 학자였어요.
하지만 그의 책은 런던 보헤미안들의 성경이 됐습니다.
20세기 초 런던에 블룸즈버리 그룹이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경제학자 케인즈, 작가 리튼 스트레이치처럼 영국 지성계를 뒤흔든 사람들이 모인 살롱이었죠.
이들이 무어의 Principia Ethica를 거의 종교처럼 읽었어요.
케인즈는 나중에 회고록에 이렇게 썼어요.
"우리는 이 책으로 살았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정작 무어 본인은 케임브리지에서 조용히 강의하던 단정한 학자였어요.
블룸즈버리 그룹의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도서관 구석의 사서가 어느 날 자기 책으로 록스타가 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록 콘서트에 한 번도 안 간 격이에요.

무어는 박사논문 심사보고서에 솔직하게 썼어요.
이 논문은 천재의 작품이라고.
1929년,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어요.
언어와 논리의 관계를 파고든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로, 이미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논리철학논고)라는 책을 출간한 상태였어요.
그 출간된 책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는데, 심사위원이 무어와 러셀이었어요.
무어는 심사보고서에 이렇게 적었어요.
"이 논문은 천재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이것은 케임브리지 박사학위 기준에 충분하다."
구술시험이 끝난 뒤, 비트겐슈타인이 두 심사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져요.
"걱정 마요, 당신들이 절대 못 알아먹을 거 알고 있어요."
자기보다 뛰어난 학생을 심사해야 하는 처지를 알면서도, 무어는 그 천재성을 솔직하게 인정했어요.
손바닥 두 개로 300년짜리 논쟁을 끝내고, 정의 불가능을 증명하기 위해 200쪽을 쓰고, 자신보다 뛰어난 학생을 기꺼이 천재라 적은 남자.
무어가 평생 가장 확신한 건 결국 이거였어요.
가장 당연한 것 앞에서, 솔직할 것.
그런데 그 솔직함이 역설적으로 가장 어렵지 않나요.
300년 동안 그렇게 많은 천재들이 손을 들지 못했으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