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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낙사고라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재산을 버리는 것이었어요.
기원전 500년경, 현재 터키 서해안의 항구도시 클라조메나이에서 태어난 그는 귀족 가문의 상속자였어요.
하지만 자기 몫의 토지와 저택을 전부 친척들에게 양도하고 아테네로 떠났어요.
오늘날로 치면, 가업으로 물려받을 건물과 땅을 형제에게 다 넘기고 "나는 별이나 보겠다"며 혼자 상경한 것과 같아요.
주변에서 당연히 물었겠죠. "왜 태어난 거야?"
그의 대답은 단 한 줄이었어요. "해와 달과 하늘을 연구하기 위해서요."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과학으로 설명한 사람은, 아테네 사람이 아니었어요.
당시 철학의 선진지는 이오니아였어요.
이오니아 자연철학이란 "번개가 제우스의 노여움이 아니라, 관찰로 설명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이다"라는 태도예요.
쉽게 말하면, 신 대신 자연 법칙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에요.
아낙사고라스는 그 철학을 아테네로 들여온 첫 번째 사람이었어요.
그는 30년 가까이 아테네에 머물며 가르쳤고, 훗날 아테네 황금기를 이끈 최고 권력자 페리클레스가 그의 직제자였어요.
페리클레스의 합리주의적 통치 스타일이 아낙사고라스에게서 왔다는 평가가 고대부터 있었어요.
부와 가문을 다 버리고 아테네에 건너온 외부인이, 그 도시의 정신적 토대를 깐 거예요.
시골 출신 무명 강사가 훗날 나라를 이끌 청년의 평생 스승이 된 것과 비슷한 구도예요.

그는 그리스인이 신이라 믿던 태양을, 시뻘겋게 달궈진 돌이라고 불렀어요.
당시 그리스인에게 태양은 헬리오스 신이었고, 달은 셀레네 여신이었어요.
하지만 아낙사고라스는 달랐어요.
그는 태양이 "그리스 남부의 거대한 반도인 펠로폰네소스보다도 큰 시뻘겋게 달궈진 금속 덩어리"라고 주장했어요.
달도 마찬가지였어요.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 빛을 반사할 뿐이며, 일식과 월식은 천체의 위치 변화로 생기는 자연 현상이라고 설명했어요.
지금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신성모독과 다름없었어요.
광화문 한복판에서 "태극기는 그냥 천 쪼가리야"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의 선언은 단순히 틀린 학설이 아니라, 아테네 사람들이 수백 년간 믿어온 세계관 전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거든요.

철학자가 자기 학설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건, 기록상 그가 처음이었어요.
기원전 430년대, 아낙사고라스는 아세베이아 죄목으로 아테네 법정에 기소됐어요.
아세베이아는 신을 모독한 불경죄예요.
오늘날로 치면 국가 종교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혐의예요.
하지만 이 재판에는 정치적 속셈도 있었어요.
반대파가 페리클레스를 직접 공격하기 어려워지자, 그의 스승을 먼저 무너뜨리려 한 거예요.
아낙사고라스는 페리클레스를 흔들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결국 페리클레스가 직접 법정에 나타나 스승을 변호했어요.
그리고 아낙사고라스를 아테네 밖으로 빼돌렸어요.
그는 에게해 건너편 도시 람프사코스로 망명해 기원전 428년경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죽기 전 그가 남긴 마지막 부탁이 있었어요.
"내가 죽은 날, 람프사코스의 아이들은 학교를 쉬게 해달라."
도시는 수백 년간 그 약속을 지켰어요.
본국에서 신을 모독한 죄로 쫓겨난 철학자가, 망명지에서는 아이들의 휴일로 기억됐어요.
70년 뒤 소크라테스는 같은 죄목 아세베이아로 사형을 당했어요.
아낙사고라스가 그 길의 첫 번째였어요.
그 아이들이 왜 학교를 쉬는지 알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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