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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낙시메네스가 한 첫 번째 일은 스승의 학설을 버리는 것이었어요.
기원전 6세기, 지금의 터키 서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밀레토스에 한 사제지간이 있었어요.
스승은 아낙시만드로스, 당대 가장 존경받는 자연철학자였습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을 아페이론이라 불렀어요.
아페이론은 '형체도 없고 끝도 없는 어떤 것'이에요.
물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그 어떤 구체적인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추상적 원질입니다.
스승은 이 모호한 '무언가'가 세상 모든 것의 뿌리라고 평생 주장했어요.
그런데 제자는 달랐습니다.
아낙시메네스는 스승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딱 하나를 뒤집었어요.
"만물의 근원은 아페이론이 아니라 공기(아에르)야."
오늘날로 치면 박사과정 제자가 지도교수의 평생 대표작을 첫 논문에서 정면 반박한 것과 같아요.
학문적으로는 엄청난 도발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낙시메네스에게는 이유가 있었어요.
스승의 아페이론은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다고 느꼈거든요.
"형체가 없는 것"에서 어떻게 형체가 있는 세상이 나오는지, 누구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장 잡을 수 없는 것을 모든 것의 답이라 했어요.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손으로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낙시메네스는 바로 그 공기가 세상 모든 것의 재료라고 주장했어요.
그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 되고, 농축되면 바람이 되고, 더 농축되면 구름이 되고, 더 가면 물이 되고, 흙이 되고, 돌이 된다는 거예요.
이게 왜 대단한지 느껴보려면, 비교가 필요해요.
모든 음식의 재료가 '밀가루'라고 말하는 것과, 모든 음식의 재료가 '맛'이라고 말하는 차이가 있잖아요.
스승의 아페이론은 후자에 가까웠어요.
반면 아낙시메네스의 공기는 전자입니다.
실제로 존재하고, 실제로 변하는 무언가예요.
그는 증거도 가져왔어요.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입을 크게 벌려서 후~ 하고 내뿜으면 따뜻하고, 입술을 좁혀서 후~ 하고 불면 차갑게 느껴지잖아요.
같은 공기가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성질을 띤다는 거예요.
이게 핵심이었습니다.
추상적 원리 대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상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거든요.
이 방법이 훗날 서양 자연철학 전체의 방향을 정했어요.

그는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신을 부르지 않고, 자기 숨을 들었어요.
아낙시메네스가 남긴 말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게 있어요.
"우리 영혼이 공기인 것처럼, 숨(프네우마)이 우주 전체를 둘러싸고 지탱한다."
프네우마는 '생기 있는 숨결'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힘 같은 개념입니다.
이 말 안에 담긴 충격을 한번 느껴보세요.
내가 지금 들이쉬는 숨과, 저 하늘에 별이 떠 있는 이유가, 같은 원리라는 주장이에요.
그 시대 사람들은 우주를 설명할 때 신화를 썼어요.
제우스가 이렇게 만들었다, 아틀라스가 하늘을 받치고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낙시메네스는 신 대신 호흡을 꺼내들었어요.
가장 일상적이고, 모두가 매순간 경험하는 그것으로 우주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선언이었거든요.
신화를 자연으로 교체한 것이에요.

그가 눈을 감자, 그를 길러낸 도시도 함께 죽었어요.
아낙시메네스는 밀레토스 학파의 마지막 철학자였어요.
밀레토스 학파는 탈레스에서 시작해 아낙시만드로스를 거쳐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진 세 철학자의 계보입니다.
서양 최초의 자연철학 학파였어요.
그런데 아낙시메네스가 세상을 떠난 직후, 기원전 494년경에 페르시아 제국이 밀레토스를 공격했어요.
당시 페르시아는 지중해 동쪽 전체를 장악한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그들은 밀레토스를 함락하고 도시 전체를 불태웠어요.
학파의 본거지가 말 그대로 지도에서 사라진 거예요.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이던 광장도, 제자를 가르치던 공간도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마치 모교가 졸업 직후 폐교되고, 그가 남긴 강의록만 다른 도시에서 교과서로 쓰이는 것 같은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철학의 중심은 이오니아에서 남이탈리아와 아테네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아낙시메네스가 만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신화 대신 관찰로 세계를 설명한다"는 방법론은 도시의 멸망과 함께 죽지 않았습니다.
훗날 피타고라스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데모크리토스가 이 방법을 이어받아 각자의 답을 찾아갔어요.
공기가 희박해지고 농축되면서 세상 모든 것이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없어진 뒤에도, 계속 희박해지고 농축되면서, 서양 철학 전체에 스며들었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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