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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식을 모두에게 공개하겠다고 평생 외친 남자가, 자기가 쓴 가장 좋은 글은 아무도 못 보게 서랍에 가둬뒀어요.
드니 디드로는 18세기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지식인이에요.
인류가 그때까지 쌓은 모든 지식을 책 한 세트에 담겠다며 거대한 백과사전 편집을 이끌었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의 작품 중 가장 빛나는 세 편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정식 출판되지 않았어요.
'라모의 조카', '달랑베르의 꿈'(1769년), '자크와 그의 주인'(1770년대)이 바로 그 작품들이에요.
사본을 몇몇 친구에게만 슬쩍 돌려 읽혔을 뿐이에요.
마치 평생 SNS로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이, 정작 가장 솔직한 일기는 죽을 때까지 서랍 깊은 곳에만 넣어뒀던 것처럼요.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그보다 앞선 시절에 있어요.

감옥 102일은 디드로를 침묵시키지 못했어요.
풀려나자마자 그는 훨씬 더 위험한 일을 떠맡았어요.
1749년 7월, 36살의 디드로는 익명으로 짧은 책 하나를 펴냈어요.
'맹인에 관한 편지'예요.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탐구하다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질문을 정면으로 건드린 책이에요.
당시 프랑스에서 신을 의심하는 것은 오늘날 테러리스트로 지목되는 것과 비슷한 무게였어요.
당국은 디드로를 무신론자로 의심했고, 파리 외곽 뱅센 성에 그를 가뒀어요.
뱅센 성은 왕실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격리하는 곳이었어요.
102일이 지나 풀려났어요.
그런데 디드로는 그다음에 더 조심해서 살았을까요?
정반대였어요.
출소 직후 그는 백과사전 편집장 자리를 맡았어요.
오늘날로 치면 내부고발로 해고된 사람이, 다음 주에 직접 폭로 전문 매체를 차리겠다고 선언한 격이에요.
감옥 경험이 그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더 큰 판을 벌이게 했던 거예요.
그리고 그는 그 판을 25년간 혼자 끌고 갔어요.

동료는 8년 만에 떠났고, 출판업자는 그의 글을 몰래 잘라냈어요.
그래도 디드로는 25년을 버텼어요.
백과사전(Encyclopédie)은 본문 17권에 도판 11권, 항목만 7만 4천 개짜리 거대 프로젝트였어요.
1751년에 시작해 1772년에야 완성됐어요.
오늘날로 치면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전체를 한 팀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써내려간 거예요.
1759년에는 교황과 프랑스 정부가 동시에 금서 처분을 내렸어요.
하지만 디드로는 비밀리에 작업을 계속했어요.
함께 시작했던 공동 편집자 달랑베르는 1758년 손을 뗐어요.
수학자 출신으로 백과사전 서문을 썼던 인물인데, 외부 압박을 견디지 못한 거예요.
거기에 출판업자는 디드로 몰래 원고 일부를 검열하고 삭제하기까지 했어요.
그래도 디드로만 끝까지 남았어요.
청년기에 시작한 프로젝트를 혼자 환갑 가까이까지 끌고 간 거예요.
감옥을 나온 사람이, 동료가 떠난 자리에서, 검열당한 원고를 손에 쥐면서도 계속했어요.
그리고 이 시절 내내, 그의 가장 깊은 생각들은 서랍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디드로의 가장 위대한 책은 그가 죽고 21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독일어로 먼저 활자가 됐어요.
1784년 디드로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원고들은 뿔뿔이 흩어졌어요.
일부는 러시아 황실로 넘어갔는데, 그 경위가 특이해요.
디드로는 딸 결혼 자금이 없어 곤란해하던 참이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가 그의 장서 전체를 통째로 사들였어요.
황제가 한 철학자의 책장 전부를 현금으로 사준 거예요.
그 원고 가운데 하나가 독일 시인 실러를 거쳐 괴테에게 전해졌어요.
괴테는 1805년 '라모의 조카'를 독일어로 번역해 출간했어요.
프랑스어 원본은 그로부터 18년 뒤인 1823년에야 발견됐어요.
그 뒤로 이 책의 이력이 놀라워요.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 책을 직접 인용했어요.
마르크스도, 프로이트도 이 작품을 언급하며 자신의 사상을 쌓아올렸어요.
살아 있을 때 몇 명의 친구만 읽었던 글이, 사후에 19세기 유럽 사상 전체를 흔든 핵심 텍스트가 됐어요.
한 번도 전시된 적 없는 화가의 그림이 사후에 미술관 대표 작품이 된 것처럼요.
디드로는 그걸 알았을까요?
알면서도 서랍에 넣어뒀던 걸까요, 아니면 그 글들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은 정말 몰랐던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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