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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의 본명은 카나다가 아니었어요.
진짜 이름은 카샤파(Kaśyapa)예요.
'카나다(Kaṇāda)'는 사람들이 비웃듯 붙여준 별명이에요.
산스크리트어로 '카나(kaṇa)'는 곡식알이자 작은 입자, '아다(ada)'는 먹는 자예요.
그는 추수가 끝난 들판에 떨어진 낟알만 주워 먹는 극단적 금욕 수행, 웅차브리티(uñchavṛtti)를 평생 지켰어요.
남들이 버리고 지나친 것만 먹는다는 규칙이에요.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웃었어요.
"저 사람, 쓰레기 줍는 거야?"
그런데 이 비웃음에는 아이러니한 반전이 있어요.
카나(kaṇa)는 '곡식알'이기도 하지만, 산스크리트어에서 '입자, 원자'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의 별명은 글자 그대로 '원자를 먹는 자'였어요.
그리고 그는 정말로 원자를 발견했어요.
쓰레기 줍는 사람이라고 놀림받던 사람이, 그 쓰레기에서 우주의 비밀을 발견한 셈이에요.

그는 햇빛 사이를 떠다니는 먼지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것이 원자예요."
오늘도 커튼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면 먼지가 둥실둥실 떠다니죠.
카나다는 바로 그 먼지를 보면서 물질의 최소 단위를 추론했어요.
그가 편찬한 책이 〈바이셰시카 수트라(Vaiśeṣika Sūtra)〉예요.
'특수성에 관한 격언집'이라는 뜻으로, 이 책에서 카나다는 모든 물질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영원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선언해요.
그 입자의 이름이 파라마누(paramāṇu)예요.
'파라마(parama)'는 최고·극한, '아누(aṇu)'는 작은 것.
합치면 '가장 작은 것', 즉 원자예요.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원자 두 개가 결합한 이원자체, 세 개가 모인 삼원자체를 설명했어요.
그 삼원자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 했어요.
망원경도, 현미경도 없던 시대였어요.
하지만 그는 도구가 없으니 일상 자체를 도구로 삼았어요.
들판의 낟알, 창문의 먼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끌어낸 거예요.

그가 정리한 우주에는 단 9가지 재료뿐이었어요.
오늘날 화학 주기율표에는 원소가 100개가 넘어요.
하지만 카나다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실체를 딱 9가지로 압축했어요.
화학 주기율표가 만들어지기 2300년 전의 일이에요.
그가 나눈 9가지는 이래요.
흙, 물, 불, 바람, 에테르, 시간, 공간, 자아, 마음.
앞의 네 가지는 원자로 구성되고, 나머지 다섯은 원자가 아닌 별개의 영원한 실체라고 했어요.
그중 눈에 띄는 건 시간과 공간이에요.
그는 시간과 공간을 흙·물과 동급의 실체로 올려뒀어요.
2000년 뒤 칸트와 아인슈타인이 다시 치열하게 다투게 될 주제예요.
그리고 8번째가 '자아(아트만)', 9번째가 '마음(마나스)'이에요.
의식을 원자 바깥에 따로 둔 거예요.
원자론자였지만 영혼은 살려뒀던 거예요.

카나다가 인도에서 원자를 말하던 그 시기, 지구 반대편 그리스에서도 한 사람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어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도 원자를 주장했어요.
그는 모든 것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알갱이, 아토모스(atomos)로 이루어졌다고 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쓰는 'atom(원자)'이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같은 시대, 같은 결론.
하지만 두 사람의 원자는 결정적으로 달랐어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영혼이 없는 기계적 알갱이였어요.
우주는 그냥 원자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는 기계일 뿐이었어요.
반면 카나다의 원자는 흙·물·불·바람 네 종류로 나뉘었고, 의식은 원자로 환원되지 않는 별도 실체로 남겨뒀어요.
영국 화학자 존 달턴(John Dalton)이 근대 원자론을 발표한 건 1808년이에요.
카나다의 〈바이셰시카 수트라〉는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로 추정돼요.
가장 보수적으로 잡아도 달턴보다 1600년, 통설로는 2500년 앞서요.
그런데 카나다는 교과서에 없어요.
데모크리토스가 서구 원자론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동안, 카나다의 체계는 니야야 학파에 흡수됐어요.
니야야 학파는 고대 인도의 논리학 전통으로, 바이셰시카의 원자론을 통합하면서 독립 학파로서의 바이셰시카는 서서히 사라졌어요.
19세기 서구 과학이 원자를 '재발견'하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무대 바깥에 있었어요.
길바닥 낟알을 줍던 그는, 역사의 무대에서도 그렇게 지워졌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줍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것이 곡식알이든, 먼지든,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든.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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