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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죽기 1년 전, 보에티우스는 왕국에서 왕 다음으로 강한 사람이었어요.
510년에는 로마의 집정관, 그러니까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쯤 되는 자리에 올랐고, 522년에는 왕국 전체의 행정 총책임자 자리까지 차지했어요. 같은 해, 두 아들이 동시에 집정관에 오르는 가문의 영광까지 누렸죠.
그런데 딱 1년 뒤에 일이 터졌어요.
동료 의원 알비누스가 "동로마 황제와 몰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혐의로 고발을 당했어요. 보에티우스는 그 자리에서 알비누스를 변호했고, 그게 화근이 됐어요. 둘 다 반역죄와 마법죄로 체포돼 버렸거든요.
재판은 없었어요.
평생 섬기던 테오도리쿠스 왕이 직접 처형을 결정했고, 보에티우스는 이탈리아 북부 파비아의 감옥에 갇혔어요. 회사 부사장이 어느 날 갑자기 회장에게 체포돼 지하실에 던져진 셈이에요. 변호인도 없이, 재판도 없이.

그는 자기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자, 책 속에서 위로해 줄 사람을 직접 만들어냈어요.
523년 무렵, 감옥 안에서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위안〉을 쓰기 시작했어요. 다섯 권 분량인데, 산문과 시가 번갈아 나오는 독특한 형식이에요. 형이 확정된 사형수가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쓴 대화록이죠.
책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해요.
감옥 안에 갑자기 키 큰 여인이 나타나요. 그녀가 바로 철학의 여신이에요. 보에티우스는 이 여신과 대화를 나누며 운명이 무엇인지, 진짜 행복은 어디 있는지, 왜 악인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물어요.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는 죄수가 쓴 자기위로서가 이후 천 년 동안 유럽 전체의 위로가 됐어요. 그게 이 이야기의 첫 번째 반전이에요.

그가 마지막 1년 동안 부른 이름은 예수가 아니었어요.
보에티우스는 평생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어요. 〈오푸스쿨라 사크라〉, 그러니까 삼위일체 교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신학 논문집을 따로 쓴 사람이에요. 오늘날 신학에서 쓰는 '인격(persona)'의 정의, 그러니까 "이성적 본성을 가진 개체적 실체"라는 표현도 그가 처음 만들었어요.
그런데 〈철학의 위안〉 다섯 권 어디에도 예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성경도 없고, 십자가도 없고, 기도도 없어요. 대신 그를 위로하러 온 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들의 언어로 말하는 철학의 여신이에요. 평생 교회를 다닌 신자가 임종 직전 신부 대신 철학과 교수를 불러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에요.
왜 그랬을까요?
학자들은 지금도 의견이 갈려요. 어떤 이는 그리스·로마 독자를 위해 고의로 뺐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극도의 절망 앞에서 신앙이 아닌 이성을 먼저 붙잡은 거라고 해요. 확실한 건 하나예요. 평생 삼위일체를 변호한 신학자가 마지막 순간만큼은 사제가 아닌 이교 철학자들의 후예를 불렀다는 것.

그가 죽기 직전 그린 수레바퀴 하나가 이후 천 년 동안 유럽인이 인생을 이해하는 방식이 됐어요.
〈철학의 위안〉 2권에서 철학의 여신은 운명을 이렇게 설명해요. 눈을 가린 여신이 거대한 바퀴를 돌리는 거예요. 바퀴 꼭대기에 있던 사람은 내려오고, 바닥에 있던 사람은 올라가요. 여신은 누구 편도 아니에요.
이것이 행운의 수레바퀴(Rota Fortunae)예요.
이 한 장면이 중세 1000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도상이 됐어요. 교회 벽화에, 필사본 삽화에, 조각에 수레바퀴가 반복해서 등장해요. 단테는 〈신곡〉에서 보에티우스를 천국에 배치했고, 영국의 알프레드 대왕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직접 〈위안〉을 영어로 번역했어요.
한 사람이 죽기 직전 그린 이미지 하나가 이후 천 년 동안 모든 나라 교과서의 삽화가 된 셈이에요.
보에티우스는 책을 완성한 직후 처형됐어요. 머리에 끈을 감아 조이는 방식이었다고 전해져요. 그가 책에서 논증한 것, 그러니까 "행운은 언젠가 반드시 뒤집힌다"는 말은 이미 그 자신의 삶에서 증명이 끝난 뒤였어요.
수레바퀴는 지금도 돌고 있고, 그 위에 올라선 사람은 항상 자기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죠.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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