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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픽테토스라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었어요.
그리스어로 "구입된 자"라는 뜻의 노예 라벨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창고 재고 코드예요.
그의 진짜 이름은 역사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는 기원후 50년 무렵 프리기아, 지금의 터키 남서부 지역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나이에 로마로 끌려가 에파프로디투스라는 자의 노예가 됐어요.
에파프로디투스는 네로 황제의 비서이자 측근으로, 황제 곁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쥔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이 창고 코드가 2000년 뒤 서양 철학 교과서 표지에 올라갔어요.
서양 사상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의 이름이, 사실은 노예 시장의 물건 번호였던 거예요.

주인이 노예의 다리를 비틀고 있었어요.
노예는 비명 대신 한 마디만 했어요.
"그렇게 계속 비트시면 다리가 부러질 겁니다."
에파프로디투스가 에픽테토스의 다리를 비틀기 시작했을 때, 그는 공포에 떨지도, 애원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정말로 다리가 부러졌을 때, 에픽테토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어요.
"보세요, 제가 말했잖소."
후대 전기 작가의 기록에 남아 있는 이 장면은, 그가 평생 가르칠 스토아 철학의 핵심을 몸으로 보여 준 순간이었어요.
스토아 철학은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예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자기 다리가 부러지는 순간에도 그 원칙을 지킨 거예요.
이 사건 이후 에픽테토스는 평생 절름발이로 살았어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그를 더 설득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고통 앞에서 노예가 주인보다 더 평정했다는 사실이, 그가 가르치는 철학의 살아있는 증거가 됐거든요.

황제가 로마에서 철학자들을 모두 쫓아냈어요.
그 명단에 노예 출신 절름발이 에픽테토스도 있었어요.
기원후 93년 무렵,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철학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흔든다고 봤어요.
도미티아누스는 원로원조차 공포에 떨게 했던 폭군으로, 그는 철학자 전원에게 로마와 이탈리아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그때 에픽테토스는 이미 자유민이었어요.
노예에서 풀려나 로마에서 스스로 학교를 열고 가르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그 추방 명단에 이름이 올랐어요.
결국 에픽테토스는 그리스 서부 도시 니코폴리스로 옮겨갔어요.
니코폴리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악티움 해전 승리 기념으로 세운 도시예요.
거기서 그는 새 학교를 열었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가르쳤어요.
역사는 이 추방을 반전으로 기억해요.
에픽테토스를 쫓아낸 도미티아누스는 신하에게 살해당해 폭군으로만 기록됐어요.
그런데 쫓겨난 절름발이의 강의록은 훗날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필독서가 됐고, 그가 쓴 〈명상록〉 곳곳에 깊이 인용됐어요.
해고당해 "이 업계에 다시 발 들이지 마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회사는 망하고 자신은 다른 도시에 더 큰 학원을 차려 결국 후임 회장의 인생 멘토가 된 셈이에요.

에픽테토스의 책이라 알려진 것은 사실 그의 책이 아니에요.
학생이 받아 적은 강의 노트예요.
오늘날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담화록〉과 〈편람〉 두 권은 모두 제자 아리아노스가 강의를 받아쓰고 편집한 거예요.
아리아노스는 나중에 로마의 행정관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전기 작가가 된 인물인데, 젊을 때 에픽테토스의 학교에 다니면서 스승의 말을 모조리 기록했어요.
〈담화록〉은 수업 노트이고, 〈편람〉은 그 정수를 추린 요약본이에요.
에픽테토스는 극도로 검소하게 살았어요.
가진 거라곤 작은 철제 등잔 하나뿐이었는데, 어느 날 그것마저 도둑맞았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다음엔 도자기 등잔을 사야겠어. 잃어도 아깝지 않게."
평생 책 한 줄 안 썼고, 등잔 하나가 전재산이었던 사람.
그런데 그 강의 노트가 2000년 동안 팔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처음 펼치고 있어요.
그가 끝내 직접 쓰지 않은 이유가 혹시 이미 알고 있어서는 아니었을까요. 어떤 것은 기록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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