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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낙시만드로스 이전, 지구는 누군가가 떠받치고 있었어요.
시인 헤시오도스는 거인 아틀라스가 어깨로 지구를 들고 있다고 노래했어요.
그리스인들은 수백 년 동안 그 그림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어요.
아낙시만드로스의 스승 탈레스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어요.
"지구는 거인이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다"고 했어요.
그래도 받침대는 있었어요. 물이 아래에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기원전 약 570년, 밀레토스에서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의 답을 지워버렸어요.
밀레토스는 지금의 터키 서쪽 해안에 있던 그리스 식민도시예요.
"지구는 아무것도 없는 우주 한가운데 그냥 떠 있다."
받침대도 없고, 물도 없어요.
아무것도요.
텅 빈 방 한가운데 풍선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방에서 조건이 완전히 똑같다면, 그 풍선은 어느 방향으로도 굴러갈 이유가 없어요.
아낙시만드로스가 본 우주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어요.
"지구는 모든 방향에서 같은 거리에 있기 때문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당길 이유가 없다."
이건 뉴턴이 쓸 법한 균형의 언어예요.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보다 2200년 앞서 거기 도달해 있었어요.

갓난아기는 혼자 살 수 없어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 안아주지 않으면 며칠도 버티지 못해요.
그러면 이 문제가 생겨요. 만약 최초의 인간이 갓난아기 상태로 태어났다면, 인류 자체가 시작될 수 없었어요.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모순에서 출발했어요.
그의 책 〈자연에 관하여〉, 그리스 철학자가 쓴 최초의 산문 저작에 그 답이 적혀 있었어요.
"인간은 처음에 물고기를 닮은 생물 안에서 자라다가, 스스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뭍으로 나왔다."
스스로 살 수 있을 때까지 보호된 채로 자라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종이 끊기지 않을 수 있어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건 1859년이에요.
아낙시만드로스의 이 가설보다 약 2400년 뒤예요.
다윈이 "인간은 어류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쓰기 전에, 이미 한 그리스인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아낙시만드로스에게 화석도 없었고 유전자 지식도 없었어요.
하지만 논리가 있었어요.
후대 학자 켄소리누스와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그 대목을 자신의 글에 인용해서 오늘날까지 전해줬어요.

인류 최초의 세계지도는 사라졌어요.
그것을 그린 사람의 이름만 남았어요.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리스인이 알고 있던 거주 세계 전체를 청동판에 새겼어요.
세상 어딘가에 지도가 있는 게 당연한 지금과 달리, 그때는 비교할 이전 지도가 아예 없었어요.
머릿속의 지식과 뱃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 세계를 한 판 위에 올려놔야 했어요.
그는 별의 위치를 나타낸 천구도 함께 만들었어요.
천구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입체적으로 나타낸, 오늘날의 지구본처럼 생긴 모형이에요.
후대 지리학자 헤카타이오스와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그 지도를 자신의 저술에서 언급했어요.
그런데 지도는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아요.
청동판도, 천구 모형도, 단 하나도요.
우리는 "아낙시만드로스가 만들었다"는 문장만 갖고 있어요.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이 사라지고, 누군가의 일기에 '그가 한때 위대한 극을 썼다'는 한 줄만 남은 것과 같아요.
그 작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있었다는 사실은 알아요.
아낙시만드로스의 세계지도가 정확히 그래요.

아낙시만드로스의 책은 사라졌어요.
그러나 한 문장이 2600년을 건너왔어요.
〈자연에 관하여〉는 철학사 최초의 산문 책으로 알려져 있어요.
산문이란 시처럼 운율을 맞추지 않고 쓰는 일반적인 글이에요.
그 이전 사상가들은 대부분 시 형식으로 우주를 설명했는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처음으로 일상의 언어로 자연을 기록했어요.
하지만 그 책의 거의 전부가 사라졌어요.
6세기 학자 심플리키오스가 자신의 주석서에 단 한 문장을 인용해뒀고, 그게 오늘날 우리가 직접 읽을 수 있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전부예요.
"만물의 근원은 아페이론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질서에 따라 서로에게 정의를 갚는다."
아페이론은 그리스어로 '한계 없음', 즉 무한이에요.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을 때, 아낙시만드로스는 한 발 더 들어갔어요.
물이 근원이라면 물은 어디서 왔는지 설명해야 하고, 그러면 또 다른 근원이 필요하고, 결국 끝이 없어요.
그래서 그는 어떤 구체적인 것도 아닌, 이름조차 붙이기 어려운 '무한한 것'이 시작이어야 한다고 결론 냈어요.
이 한 문장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서 있던 바닥이에요.
서양 철학 전체가 이 한 줄의 그림자 안에서 자란 셈이에요.
기원전 약 610년에 태어나 546년 무렵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이 남긴 게 이거예요.
지구를 공중에 띄웠고, 진화의 씨앗을 심었고, 세계를 한 장의 판에 담았고, 철학의 언어를 바꿨어요.
2600년이 지나도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그 한 문장 안에 있는 것 같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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