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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유럽 최고의 수학자가 어느 날 책상을 비우고 외국행 마차에 올랐어요.
새 왕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죠.
1830년, 프랑스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났어요.
시민들이 왕을 몰아내고 새 국왕 루이 필리프를 세웠고, 정부는 모든 공직자에게 새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가 인수합병된 후 새 대표가 임원 전원에게 서명을 요구한 것과 같아요.
대부분은 서명했어요.
하지만 오귀스탱 루이 코시는 펜을 내려놓았어요.
그 결과로 잃은 건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직이었는데, 이 학교는 당시 유럽 수학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죠.
코시는 이탈리아 토리노로 떠났고, 이후 프라하까지 갔어요.
거기서 폐위된 부르봉 왕가의 후계자인 보르도 공작의 가정교사를 맡았어요.
그렇게 8년간 프랑스를 떠나 있었어요.

코시가 왕에게 그토록 충성한 이유는, 그가 혁명의 칼날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기 직전에 태어난 코시는 혁명의 공포를 몸으로 겪었어요.
아버지는 왕정 관료였어요.
혁명 세력이 귀족과 왕의 편이었던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낼 때,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파리 남쪽 시골 마을 아르쾨유로 도망쳤어요.
그런데 그곳의 이웃이 범상치 않았어요.
바로 라플라스와 베르톨레가 살고 있었거든요.
라플라스는 태양계의 움직임을 수학으로 완성한 당대 최고의 거장이고, 베르톨레는 화학계의 선구자였어요.
어린 코시는 이들에게 직접 수학과 과학을 배웠어요.
그런데 어머니로부터는 다른 것을 물려받았어요.
평생 변하지 않을 가톨릭 신앙과 왕정에 대한 깊은 충성심이었죠.
혁명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어른이 되자 가장 강경한 반혁명 진영의 대표 인물이 됐어요.

현대 수학의 엄밀함을 세운 그 손이, 자기 시대 두 천재의 논문을 책상 서랍에 묻었어요.
수학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 중 하나예요.
1826년, 노르웨이에서 한 젊은 수학자가 파리 과학아카데미에 논문을 보냈어요.
닐스 헨리크 아벨이라는 청년이었는데, 수백 년간 수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5차 방정식의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신입 연구원이 노벨상급 보고서를 임원 책상에 올려놓은 셈이에요.
심사를 맡은 게 코시였어요.
그런데 코시는 원고를 책상에 처박아두고 평가를 차일피일 미뤘고, 아벨은 결국 논문의 운명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났어요.
1829년에는 17세 갈루아의 논문이 같은 운명을 맞았어요.
갈루아의 논문은 아예 분실됐고, 갈루아 역시 20대 초반에 결투로 죽었어요.
두 천재 모두 20대에 죽었고, 그들의 업적은 사후에야 세상에 알려졌죠.
결국 수학에 '엄밀함'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 정작 자기 시대에서 가장 엄밀한 증명을 들고 온 두 청년을 알아보지 못한 거예요.

오늘 공대생이 칠판 앞에서 쩔쩔매는 미적분 정의는, 200년 전 망명 직전의 한 왕당파가 쓴 교과서에서 그대로 나왔어요.
코시가 1821년에 쓴 『해석학 강의(Cours d'analyse)』가 그 책이에요.
이 교과서에서 코시는 처음으로 ε-δ(엡실론-델타) 극한 정의를 정립했어요.
직관에 의존했던 뉴턴 시대의 미적분을,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명확한 수학 언어로 처음 번역한 작업이에요.
"무한히 가까워진다"는 막연한 말 대신, "이 범위 안에 들어오면 반드시 저 범위 안에 있다"는 식으로 딱 못 박아버린 거예요.
코시의 이름이 붙은 수학 도구는 이것만이 아니에요.
코시 수열, 코시-슈바르츠 부등식, 코시 적분 정리, 코시의 잔류 정리. 현대 해석학과 복소함수론의 거의 모든 핵심 개념에 그의 이름이 달려 있어요.
그는 평생 789편의 논문을 발표해, 오일러 다음으로 역사상 두 번째로 다작한 수학자로 기록됐어요.
정치적으로는 시대를 거스른 완고한 왕당파였고, 같은 시대의 두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가 만든 수학 도구 없이는 오늘날의 통신, 항공, 금융공학이 한 줄도 작동하지 않아요.
코시라는 사람은 우리에게 묘한 불편함을 남겨요.
위대한 업적과 좁은 시야가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코시 자신은 아마 평생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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