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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 프로그래머가 고장 난 엘리베이터 앞에서 21층을 걸어 올라간 날,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언어가 시작됐어요.
2006년, 그레이든 호어(Graydon Hoare)는 캐나다 모질라 소속 엔지니어였어요.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니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소프트웨어 버그로 멈춰 있었어요.
그는 21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도대체 왜 소프트웨어는 이렇게 고장이 잦은 거야?"
숨을 헐떡이며 집에 도착한 그날 밤, 호어는 새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와이파이가 자꾸 끊긴다고 직접 인터넷 표준을 새로 만들겠다고 결심하는 격이에요.
그런데 그 황당해 보이는 결심이 현실이 됐어요.
당시 대부분의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C 언어로 작성됐어요.
C는 1972년에 만들어진 언어로, 컴퓨터 자원을 직접 다룰 수 있어서 빠르지만, 메모리를 잘못 건드리면 프로그램이 멈추거나 해커가 침투하는 구멍이 생겨요.
엘리베이터를 멈추게 한 그 버그도 바로 이런 종류였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호어가 원한 건 단순했어요.
"빠르면서도 안전한 언어."
그전까지 프로그래머들은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불가능하다고 여겼어요.
Rust라는 이름은 녹슨 쇠가 아니에요.
농작물을 망가뜨리는 곰팡이 이름이에요.
호어는 훗날 직접 밝혔어요.
'Rust'라는 단어를 녹병균(rust fungi)에서 가져왔다고요.
녹병균은 밀이나 보리 같은 곡물에 기생해서 황금빛 이삭을 갈색으로 물들이는 곰팡이예요.
이 균은 생존하기 위해 무려 다섯 단계의 복잡한 생활주기를 거쳐요.
호어는 그 모습을 보고 "과잉설계된 생명체"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만드는 언어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느꼈어요.
지금 거의 모든 개발자가 "쇠처럼 단단한 언어라서 Rust겠지"라고 오해하고 있어요.
방탄차 이름을 'Beetle'이라 짓고는 "딱정벌레가 워낙 끈질겨서"라고 설명하는 셈이에요.
창시자의 머릿속 이미지는 쇠가 아니라 곰팡이였어요.
2020년 여름, Rust를 키운 회사가 Rust를 만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내보냈어요.
모질라(Mozilla)는 파이어폭스를 만든 회사예요.
2009년부터 호어의 개인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후원해서, 2015년 Rust 1.0 버전을 세상에 내놓은 주역이에요.
그런데 2020년 8월,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재정이 악화되자 직원 25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Rust 핵심 팀을 통째로 잘랐어요.
하필 그 타이밍이 참 묘했어요.
Rust는 2015년 이후 해마다 "가장 사랑받는 프로그래밍 언어" 설문 1위를 갱신하며 막 주류 무대로 올라서던 참이었거든요.
부모가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른으로 키워놓고, 딱 그 순간에 손을 놓은 격이에요.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모질라의 해고 발표가 나온 직후, AWS·구글·마이크로소프트 세 회사가 모여 Rust Foundation을 설립했어요.
Rust Foundation은 Rust 언어를 특정 기업에 종속되지 않게 독립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이에요.
마치 한 회사가 세상을 바꿀 팀을 키워놓고 해고했는데, 경쟁사들이 모여 그 팀의 일을 이어받은 꼴이에요.
Rust는 부모를 잃었지만, 오히려 더 넓은 세계로 나갔어요.
리눅스 커널은 1991년 이후 새 언어를 한 번도 받지 않았어요.
그 32년의 빗장이 2022년에 풀렸어요.
리눅스 커널은 여러분의 스마트폰, 구글 서버, 자율주행차까지 움직이는 운영체제의 핵심 부품이에요.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가 1991년에 만들기 시작한 이후, 이 커널은 오직 C 언어와 어셈블리로만 작성돼 왔어요.
어셈블리는 기계어에 가장 가까운 저수준 언어로, 사람이 읽기엔 어렵지만 컴퓨터가 이해하기엔 가장 직접적이에요.
토발즈는 평소 새 언어 도입에 극도로 보수적인 인물이에요.
수십 년간 수많은 언어가 커널에 들어오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그런데 2022년 12월, 커널 버전 6.1에서 그의 입장이 바뀌었어요.
이유는 하나였어요.
메모리 오류로 인한 보안 문제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는 거였어요.
그 판단 하나가 32년의 규칙을 바꿨어요.
천 년 동안 라틴어로만 적던 종교 경전에 처음으로 새 언어가 추가된 것과 비슷해요.
2006년, 한 남자가 21층 계단을 오르며 혼자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16년 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의 성문을 열었어요.
그 엘리베이터가 제때 고쳐졌다면, 지금 우리 스마트폰 안의 세상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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