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10년, 이미 프로그래밍 언어를 세 개 만들어본 50대 엔지니어가 네 번째 언어 설계에 착수했어요.
그 사람이 아네르스 하일스버그(Anders Hejlsberg)예요.
덴마크 출신 엔지니어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드는 건 대부분의 개발자에게 평생의 도전이에요.
그런데 그에겐 이미 세 번이나 해본 일이었어요.
첫 번째가 터보 파스칼(Turbo Pascal)이에요.
1980년대 PC에서 가장 널리 쓰이던 프로그래밍 언어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 초반을 대표하는 도구예요.
그다음엔 소프트웨어 기업 보를란드(Borland)에서 델파이(Delphi)를 설계했어요.
1996년엔 마이크로소프트로 자리를 옮겨 C#을 탄생시켰어요.
오늘날 게임 엔진 유니티와 기업용 소프트웨어에서 쓰이는 주류 언어예요.
한 사람이 시대마다 한 번씩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온 셈이에요.
베스트셀러 소설을 세 권 연달아 낸 작가가 은퇴 나이에 또 새 장르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굳이?"라고 하겠죠.
하지만 하일스버그가 "자바스크립트를 좀 고쳐야겠어"라고 했을 때, 이미 세 번의 성공이 그 뒤에 있었어요.
결국 그게 자바스크립트 세계를 영원히 바꿔놓았어요.

2010년부터 2년간, 마이크로소프트는 라이벌 진영의 언어를 살리는 도구를 비밀리에 만들고 있었어요.
하일스버그가 이끄는 소수 팀은 사내에서 코드명 'Project Strada'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이름도 외부엔 알려지지 않았고, 2년간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어요.
자바스크립트는 한때 마이크로소프트가 적극적으로 방해했던 언어예요.
국제적으로 자바스크립트를 더 강력하게 만들려던 ECMAScript 4 표준화 논의, 그러니까 웹 개발 커뮤니티 전체가 자바스크립트를 업그레이드하려던 시도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실상 무산시킨 적이 있었거든요.
코카콜라 직원이 회사 지하에서 펩시 맛을 좋게 만드는 시럽을 몰래 개발한 격이에요.
한때 방해했던 바로 그 언어를 살리는 도구를 같은 회사에서 비밀리에 만들고 있었던 거예요.
2012년 10월 1일, TypeScript 0.8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어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소스로 내놓으며 "자바스크립트에 타입을 추가한 확장 언어"라고 소개했어요.
타입(type)이란 변수에 어떤 종류의 데이터가 들어가는지 미리 명시하는 거예요.
마치 서랍 겉에 "양말", "셔츠"라고 써붙이듯, 코드가 수십만 줄로 커져도 뭐가 어디 있는지 헷갈리지 않게 해주는 장치예요.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지, 그때만 해도 많은 개발자가 실감하지 못했어요.

2017년, 구글은 자기가 7년 동안 밀어온 언어를 버리고 라이벌 회사가 만든 언어를 선택했어요.
구글은 2011년부터 다트(Dart)라는 자체 언어를 개발하고 밀어왔어요.
자바스크립트를 아예 대체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만든 언어로, 구글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어요.
하지만 웹 개발자 사회는 다트를 주류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 사이 TypeScript의 인기는 조용히 올라가고 있었어요.
결국 2017년, 구글 사내에서 TypeScript가 공식 인증 개발 언어 목록에 추가됐어요.
그리고 같은 해, 구글의 대표 웹 개발 프레임워크 앵귤러(Angular)도 다트 대신 TypeScript를 기본 언어로 채택했어요.
앵귤러는 구글이 만들어 전 세계 수백만 개발자가 사용하는 오픈소스 도구예요.
그 앵귤러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언어를 선택한 거예요.
식당 사장이 직접 개발한 비밀 소스를, 길 건너 라이벌 식당이 자기 메뉴에 정식 채택한 격이에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내 사이드 프로젝트가 구글의 7년짜리 전략 언어를 회사 안에서 밀어낸 셈이에요.

자바스크립트를 보조하려고 만든 언어가, 10년 만에 자바스크립트보다 더 많이 쓰이게 됐어요.
2022년 스택오버플로(Stack Overflow) 개발자 설문에서 TypeScript는 개발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언어 4위에 올랐어요.
스택오버플로는 전 세계 개발자들이 코딩 문제를 올리고 답하는 가장 큰 온라인 커뮤니티예요.
2023년 깃허브 옥토버스(GitHub Octoverse) 보고서에서는 더 극적인 결과가 나왔어요.
신규 프로젝트 기준으로 TypeScript가 자바스크립트를 제치고 3위에 올라섰어요.
자바스크립트는 TypeScript에 자기 자리를 내줬어요.
책의 각주를 모은 부록이 본문보다 두꺼워지더니, 결국 본문은 안 읽고 부록만 읽는 독자가 더 많아진 격이에요.
"보조 도구"로 시작한 게 본체보다 더 많이 쓰이는 중심이 된 거예요.
2010년, 한 50대 엔지니어가 조용히 새 노트를 펼쳤어요.
그 노트에서 시작된 언어가 10년 뒤 자신이 고치려 했던 언어보다 더 많이 쓰이게 될 거라는 걸, 하일스버그 본인도 그때 예상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