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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선생님은 학생들을 한 시간쯤 조용히 시키려 '1부터 100까지 다 더해 와'라는 벌을 내렸어요.
7살 가우스는 30초 만에 5050이라는 답을 석판에 적어 냈어요.
1784년경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의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 이름은 뷔트너(Büttner)였어요.
학생들이 하나씩 더하고 또 더하며 끙끙댈 동안, 가우스는 문제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봤어요.
1과 100을 더하면 101이에요.
2와 99를 더해도 101이에요.
이런 쌍이 50개 나오니까, 101 곱하기 50, 답은 5050이에요.
단순히 계산이 빠른 게 아니에요.
더하기가 아니라 구조를 본 거예요.
숫자 무더기 속에서 패턴이라는 뼈대를 꺼내 본 것이죠.
가우스의 아버지는 글을 거의 못 썼고, 어머니는 문맹이었어요.
그런 집에서 자란 아이가, 수학의 구조 자체를 7살에 직관으로 파악했어요.
뷔트너 선생님은 그날 이후 자기 돈으로 함부르크에서 수학 교재를 가져다 가우스에게 건네줬어요.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이 2000년간 풀지 못한 도형 문제를, 19살 가우스는 하룻밤 만에 풀어버렸어요.
1796년 3월 30일, 그가 풀어낸 건 정17각형 작도 문제예요.
컴퍼스와 자만으로 완벽히 균형 잡힌 17각형을 그릴 수 있느냐는 문제였어요.
그리스인들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은 그릴 수 있었지만, 17각형에는 2000년째 막혀 있었어요.
가우스는 이 문제가 수 이론과 연결된다는 걸 알아챘어요.
페르마 소수, 즉 3, 5, 17, 257, 65537처럼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는 소수로 이루어진 정다각형만 작도할 수 있다는 조건을 발견한 거예요.
2000년 묶혔던 자물쇠가, 자물쇠 자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열렸어요.
이날 가우스는 일기에 이 발견을 기록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진로를 결정했어요. 언어학자가 아닌 수학자로 살기로요.
그때부터 그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나 죽으면 묘비에 정17각형 새겨줘."

가우스는 100년 뒤 아인슈타인의 우주를 가능케 한 발견을 책상 서랍에 묻었어요.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동료들에게 비웃음당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1810년대, 가우스는 놀라운 걸 알게 됐어요.
유클리드 기하학의 핵심 전제인 평행선 공준, 즉 "평행선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규칙을 깨도 수학적으로 아무 모순이 없다는 거였어요.
지구 표면 위에서는 두 직선이 결국 극지점에서 만나듯, 휜 공간의 기하학이 가능하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가우스는 발표하지 않았어요.
친구 베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어요. "보이오티아인들의 비명소리가 두렵다."
보이오티아인은 고대 그리스에서 무지하고 시끄러운 시골뜨기를 가리키던 표현이에요. 가우스 눈에 동료 학자들이 딱 그렇게 보였어요.
결국 친구였던 보야이의 아들 야노시 보야이와, 러시아의 로바체프스키가 1830년경 같은 결과를 각자 독립적으로 발표했어요.
그제야 가우스는 인정했어요. "나도 오래전에 알고 있었어."
하지만 먼저 말하지 않은 건 그였어요.
100년 뒤, 아인슈타인은 바로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 위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어요.
빛이 중력에 의해 구부러지고, 우주 자체가 평평하지 않다는 그 이론이요.
가우스가 두려움 때문에 서랍에 넣어뒀던 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 이론의 뼈대가 됐어요.

가우스는 묘비에 정17각형을 새겨달라고 했어요.
석공은 거절했어요.
너무 정밀해서 어차피 원으로 보일 거라는 이유였어요.
1855년 가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괴팅겐의 석공들은 그 유언 앞에서 멈췄어요.
17각형은 각이 너무 많아서, 조금만 삐뚤어져도 그냥 원이 돼버려요.
결국 고향 브라운슈바이크의 기념비 받침에 별 모양의 변형으로만 흔적이 남았어요.
가우스의 좌우명은 라틴어로 "Pauca sed matura"였어요.
"적게, 그러나 무르익게." 완전하지 않으면 내놓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그 완벽주의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서랍 속에 넣었고, 마지막 소원마저 돌려보냈어요.
가우스가 죽고 난 뒤 정리된 미발표 노트에서는, 당대보다 100년 앞선 수학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는 발표를 미룬 게 아니라,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고 스스로 판단했던 거예요.
만약 가우스가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수학의 역사는 얼마나 더 빨리 달라졌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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