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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양 철학을 가르치는 제국대학 교수가, 강의가 끝나면 절에 가서 좌복 위에 앉았어요.
니시다 기타로는 교토제국대학 철학과 교수였어요.
강단에서는 칸트와 헤겔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강의가 끝나면, 그는 교토에 있는 묘심사로 걸어갔어요.
묘심사(妙心寺)는 임제종 선불교 사찰이에요.
임제종은 "화두"를 붙잡고 앉아 있는 참선 수행으로 유명한 불교 종파예요.
니시다는 여기서 정식 수행자 인정을 받았고, 촌심(寸心)이라는 거사 호까지 받았어요.
거사 호는 출가하지 않은 재가 수행자에게 주는 이름이에요.
30대까지 매년 여름과 겨울, 안거에 들어갔어요.
안거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하고 절에서 집중 수행을 하는 기간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매년 두 번씩 절에 들어가 묵언 수행을 하고 정식 법명을 받은 셈이에요.
그 시대 제국대학 교수의 역할은 서양 최신 학문을 일본에 전파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니시다는 서양의 최전선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선불교의 침묵 속으로 매일 걸어 들어갔어요.
니시다는 마흔 살에, 서양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철학을 책 한 권에 담아냈어요.
1911년, 그는 『선(善)의 연구』를 출판했어요.
일본 철학이 서양 철학을 번역하고 해설하는 데 머물러 있던 시절, 처음으로 동양 사유로 서양식 철학 체계를 세운 책이었어요.
그때까지 일본 철학계는 유럽을 따라 부르는 입장이었어요.
K-pop이 처음 빌보드를 노리던 순간을 생각해 보면 비슷해요.
그전까지는 "미국 팝을 한국어로 부르는" 시대였는데, 처음으로 "이건 우리 것"이라고 말하며 차트에 올라선 거예요.
니시다는 처음으로 자기 노래를 들고 본진에 도전했어요.
책의 핵심 개념은 순수경험(純粋経験)이에요.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어서 "내가 음악을 듣고 있다"는 생각조차 사라지는 그 순간이 있잖아요.
그게 순수경험이에요. "나"와 "세계"가 갈라지기 이전의 직접적인 경험이에요.
서양 철학은 데카르트 이후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출발해요.
나와 세계는 처음부터 분리돼 있고, 그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구조예요.
니시다는 그 출발점 자체를 거부했어요. 분리되기 이전의 경험이 진짜 시작점이라고 했어요.
동서양의 화해를 말하던 철학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끌려 나왔어요.
니시다를 중심으로 교토학파(京都学派)가 형성됐어요.
교토대학 철학자들의 모임으로, 동서양 철학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이어간 그룹이에요.
그런데 1941~1942년, 제자들인 다나베 하지메, 고사카 마사아키, 고야마 이와오는 잡지 『중앙공론』에서 좌담을 열었어요.
제목은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이었어요.
그리고 일본의 대동아전쟁을 "세계사의 전환"이라고 불렀어요.
동양이 서양 중심 세계를 뒤집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논리였어요.
니시다 본인도 1943년, 군부의 요청으로 「세계신질서의 원리」라는 글을 썼어요.
동양과 서양의 대립을 넘어서자고 출발한 철학이, 결국 한쪽이 다른 쪽을 정복해야 한다는 논리에 동원된 거예요.
평화를 위해 만든 기술이 무기로 팔려가는 것과 똑같은 구도예요.
그가 이것을 원했는지, 압력에 굴복한 것인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하지만 결과만 보면, 그가 평생 쌓아온 언어가 전쟁의 언어가 됐어요.
그는 평생 죽음을 사유했고, 평생 죽음에 둘러싸여 살았어요.
니시다는 어린 자녀를 다섯이나 잃었어요.
첫 부인 고토미는 1925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1945년 6월 7일, 일본 패전을 두 달 앞두고, 그는 가마쿠라 자택에서 요독증으로 75세에 사망했어요.
그가 마지막으로 쓴 글은 「장소적 논리와 종교적 세계관」이었어요.
이 글을 막 탈고한 직후였어요.
절대무(絶対無)라는 개념이 핵심이었어요.
절대무는 "아무것도 없는 허무"가 아니에요.
모든 집착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는, 가장 근본적인 실재예요.
스마트폰 알림을 다 끄고 나서야 들리는 방 안의 정적처럼, 사라짐 이후에 나타나는 무언가예요.
그런데 그 개념을 만든 사람의 삶은, 평생 가장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반복해서 받아내야 하는 시간이었어요.
그가 죽음을 사유하게 된 건, 어쩌면 달리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가 만든 학파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서양 철학계에서 "동양이 낳은 독자 철학"의 사례로 읽혀요.
하지만 그 철학을 만든 사람은, 패전도 해방도 보지 못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그가 매일 새벽 좌복 위에 앉아 있을 때, 그는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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