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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쿠자누스의 아버지는 모젤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파는 어부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인천 어시장 아들이 교황청 2인자 자리에 오른 것과 비슷한 인생이에요.
그게 실제로 일어났어요.
중세 유럽은 태어난 집이 평생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였어요.
어부의 아들은 어부가 되는 게 당연했고, 추기경은 귀족 가문에서나 나왔어요.
하지만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달랐어요.
그는 하이델베르크와 파도바 대학에서 법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448년 추기경에 임명됩니다.
추기경은 교황 다음 가는 가톨릭 교회의 핵심 직위예요.
어부 아들이 교황청 핵심부까지 오른 사례는 당시 유럽 전체를 통틀어도 거의 없었어요.
쿠자누스가 평생 가장 자주 쓴 문장은 "나는 안다"가 아니라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였어요.
1440년, 그는 『박학한 무지』(De Docta Ignorantia)를 출판합니다.
제목을 풀면 "많이 알수록 더 깊이 모름을 깨닫는다"는 뜻이에요.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해요.
신은 인간의 이성으로 절대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는 거예요.
그러니 신에 대해 "이렇다"고 단정 짓는 순간, 그건 이미 틀린 주장이에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겉 구조는 파악해도 본질에는 영원히 닿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가톨릭 추기경이 "신을 다 알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책에 써서 펴냈다는 게 진짜 충격이었어요.
당시 신학자들은 성경과 논리학으로 신의 속성을 체계적으로 증명하는 게 신학의 목표라고 믿었어요.
쿠자누스는 거기에 정면으로 맞서서, "신을 증명한다고? 그건 신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짓이야"라고 한 셈이에요.
쿠자누스는 망원경도, 정밀 관측 기록도 없이, 순수한 사고만으로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렸어요.
같은 책 『박학한 무지』 2권에서 그는 이렇게 썼어요.
"우주는 중심이 없고 경계도 없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정지해 있지도 않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담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한 건 1543년이에요.
쿠자누스의 이 문장보다 약 100년 뒤예요.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기 시작한 건 1609년이니, 쿠자누스의 주장은 그보다 169년 앞선 것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게 있어요.
갈릴레오는 이 주장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고 가택연금을 당했어요.
하지만 쿠자누스는 같은 말을 먼저 하고도 추기경 자리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어요.
그 이유는 접근 방식에 있어요.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사실로 주장했지만, 쿠자누스는 "신이 무한하다면 우주도 중심이 없어야 한다"는 신학적 논리로 풀었어요.
같은 결론이었지만 포장이 달랐고, 그 차이가 두 사람의 운명을 갈랐어요.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 쿠자누스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한 식탁에 앉는 책을 썼어요.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기독교 세계의 상징적 심장부로, 지금의 이스탄불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바티칸이 이슬람 국가에 점령당한 것과 같은 충격이었어요.
유럽 전체가 복수를 외치던 그해 9월, 쿠자누스는 『신앙의 평화』(De Pace Fidei)를 완성합니다.
내용은 이래요.
가톨릭, 정교회, 이슬람, 유대교 등 17개 종교의 대표자들이 천국에서 만나 토론을 벌이는 가상 대화록이에요.
결말이 뜻밖이에요.
긴 토론 끝에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모든 종교는 결국 한 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야."
추기경이 "이슬람교도도 우리와 같은 신을 믿는다"고 썼다는 건, 당시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발언이었어요.
보복 정서가 끓어오르던 시점에 그는 적을 대화 상대로 끌어올렸어요.
그 근거는 결국 『박학한 무지』의 논리에서 왔어요.
신이 무한한 존재라면, 어느 한 종교가 신을 완전히 독점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고백이, 결국 관용의 토대가 됐어요.
어부의 아들이 지구를 중심에서 밀어내고, 전쟁의 해에 평화를 써 내려간 사람이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예요.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려요.
5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쿠자누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까요.
아니면 더 깊이 모르게 됐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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