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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도 육군이 행진하며 부르는 그 노래를, 파키스탄을 만든 사람이 썼어요.
1904년, 당시 27살이던 무함마드 이크발은 우르두어로 「사레 자한 세 아치하」라는 시를 썼어요.
우르두어로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는 뜻이에요.
이 노래는 지금도 인도 학교 조회에서 매일 불리고, 인도 군 행진식에서 울려 퍼져요.
한국으로 치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사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훗날 "인도를 두 개로 나눠야 해요"라고 처음 주장한 인물이 돼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쓴 사람이 나중에 연설대에 서서 "남북 분단이 맞아요"라고 말하는 상황이에요.

유럽으로 떠난 청년은 3년 만에 페르시아어로 시를 쓰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어요.
1905년, 이크발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독일 뮌헨 대학에서 「페르시아 형이상학의 발전」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어요.
유럽에서 그는 니체와 베르그송을 읽었어요.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독일 철학자고, 베르그송은 인간의 생명력과 직관을 강조한 20세기 초 프랑스 철학자예요.
이들의 책을 읽으며 이크발의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쌓였어요. "서양 철학으로 동양인인 내가 구원받을 수 있나?"
그런데 그 답을 찾아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도서관이었어요.
뮌헨 대학 도서관에서 이크발은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를 다시 만났어요.
루미는 이슬람 신비주의 시의 정점에 있는 시인으로, 신과의 합일을 춤과 시로 표현한 사람이에요.
미국에서 컴퓨터공학 박사를 받고 귀국해서 갑자기 한국 전통 시조를 쓰기 시작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바로 그게 이크발이 한 일이에요.
서양 철학을 배우러 갔다가, 이슬람과 동양 시의 뿌리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온 거예요.

단상에 오른 사람은 영국 왕이 직접 작위를 내린 "경(Sir) 무함마드 이크발"이었어요.
1930년 12월 29일, 인도 북부 알라하바드에서 무슬림 연맹 대회가 열렸어요.
무슬림 연맹은 당시 인도 무슬림들의 정치적 권리를 대표하던 조직이에요.
의장 연설을 맡은 이크발은 이렇게 말했어요.
"인도 북서부의 무슬림 다수 지역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야 합니다."
이 한 마디가 훗날 파키스탄 건국의 사상적 출발점이 돼요.
그런데 이 발언이 나온 맥락이 더 놀라워요.
이크발은 불과 8년 전인 1922년에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이었어요.
회사에서 최고 영예 직책을 받은 사람이 단상에 올라 "이 회사를 둘로 나눠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에요.
영국이 통치하는 땅 안에서, 영국이 인정한 인물이 "이 땅을 쪼개자"고 말한 거예요.
그 역설이 1930년 알라하바드 연설이었어요.

이크발은 자신이 그린 나라의 국기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었어요.
1938년 4월 21일, 이크발은 라호르에서 숨을 거뒀어요.
그가 꿈꾼 파키스탄이 실제로 건국된 것은 1947년 8월 14일, 무려 9년 뒤의 일이에요.
신혼집을 직접 설계하고 가구까지 골라뒀는데 입주 전날 세상을 떠난 건축가와 같아요.
그가 꿈꾼 나라는 세워졌지만, 정작 그는 그 땅을 밟아 보지 못했어요.
오늘날 그의 묘소는 라호르의 바드샤히 모스크 옆 대리석 영묘에 있어요.
바드샤히 모스크는 무굴 제국 시대에 세워진 거대한 붉은 사암 사원으로, 파키스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에요.
지금도 매일 파키스탄 군 의장대가 그 묘소 앞을 지켜요.
그리고 여기서 가장 묘한 일이 생겨요.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가 모두 이크발을 "우리 시인"이라고 불러요.
인도 학교에서는 그의 애국 시를 매일 부르고, 파키스탄에서는 그를 건국의 아버지로 모셔요.
한 사람이 분리된 두 나라의 정체성을 동시에 담을 수 있을까요.
이크발의 삶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를 동시에 보여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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