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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리스인이 천 년 동안 미워한 여자가 있었어요.
고르기아스는 단 한 편의 글로 그 여자를 무죄로 만들었어요.
그 여자의 이름은 헬레네예요.
트로이 전쟁의 원흉으로 지목된 인물이에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부터 수많은 신화까지, 그리스의 모든 이야기가 헬레네를 스파르타를 배신하고 트로이로 달아난 여자로 기록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전 국민 댓글창에서 욕먹는 연예인이에요.
그런데 기원전 5세기, 한 소피스트가 나타나 "그녀는 무죄입니다"라고 선언했어요.
시칠리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연설가, 고르기아스였어요.
그가 쓴 글이 「헬레네 찬가」예요.
오늘날로 치면 무죄 판결을 위한 법정 변론문이에요.
고르기아스는 여기서 헬레네가 움직인 이유를 네 가지로 나눴어요. 신의 뜻, 폭력, 사랑(에로스), 말(로고스).
그는 이 중 어느 경우에도 헬레네에게 책임이 없다고 논증했어요.
신의 뜻이라면 인간이 거스를 수 없고, 폭력이라면 피해자예요.
에로스에 이끌렸다면 사랑에 넘어간 것이고, 말에 설득당했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이 잘못이에요.
특히 말, 즉 로고스에 대한 부분이 핵심이에요.
고르기아스는 "말은 가장 강한 지배자"라고 썼어요.
작은 몸으로 신체적인 힘 없이도 신과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건 단순한 헬레네 변호가 아니었어요.
그리스 전통 전체를 향한 도발이었어요.
천 년 묵은 욕설을 논리 하나로 뒤집어버린 거예요.

고르기아스의 철학은 단 한 줄로 요약돼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그 누구보다 오래 존재했어요.
그의 저작 「있지 않은 것 또는 자연에 관하여」는 세 개의 명제로 이루어져 있어요.
첫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설령 존재해도 인식할 수 없다. 셋째, 설령 인식해도 전달할 수 없다.
"세상은 알기 어렵다"가 아니에요.
아예 "있는 것이 없다"는 선언이에요.
비유하면 이런 거예요. 당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모든 것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고, 그 내용을 남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에요.
그런데 그는 이 허무주의적 주장으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어요.
그리스 전역을 돌며 연설 강의를 팔았고, 제자들은 거금을 냈어요.
결국 "진리는 없다"는 가르침을 팔면서 최고의 부자가 된 셈이에요.
약 108세까지 살았다고 고대 철학자 열전을 기록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해요.
존재 자체를 부정한 사람이 가장 오래 존재한 거예요.
'인생은 무의미하다'를 강의하면서 매일 아침 헬스장에 가는 강사 같은 사람이었어요.

고르기아스는 군대를 빌리러 아테네에 왔어요.
그가 가져간 것은 군대가 아니라 명성이었어요.
기원전 427년, 그는 사절단 단장으로 아테네 민회에 섰어요.
민회는 아테네 시민들이 모여 공동 결정을 내리는 최고 의결 기관이에요.
그의 임무는 외교적인 것이었어요. 시칠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 레온티노이가 강국 시라쿠사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아테네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러 온 거예요.
그런데 연설을 듣던 아테네인들이 충격을 받았어요.
운율을 맞추고, 같은 구조의 문장을 대구로 반복하고,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나란히 배치하는 화법이었어요.
평소 그들이 듣던 연설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이게 오늘날 수사학에서 '고르기아스적 수사법(Gorgianic figures)'이라 부르는 기법의 시작이에요.
그날 이후 이 화법은 아테네 전체의 유행이 됐어요.
젊은 그리스인들이 고르기아스를 찾아와 돈을 내고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외교 임무의 결과는 역사에 거의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30분의 연설은 서양 수사학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회사 영업 출장을 갔다가 계약은 못 따고 발표 영상이 바이럴이 되어 강연자로 데뷔한 상황이에요.

플라톤은 고르기아스를 진리의 적이라 불렀어요.
고르기아스는 그 비난을 들으며 30년을 더 살아냈어요.
플라톤은 기원전 380년경 대화편 「고르기아스」를 썼어요.
대화편이란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와 상대방의 대화 형식으로 철학을 서술한 저작 방식이에요.
그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수사학을 "요리 같은 아첨술"이라 불렀어요.
진짜 요리사는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지만, 아첨술은 입맛만 맞추는 요리사라는 비유예요.
수사학도 마찬가지로 진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해준다는 공격이었어요.
플라톤 입장에서 고르기아스는 말로 대중을 현혹하는 위험한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고르기아스는 이 비판을 받은 뒤에도 약 30년 가까이 더 살았어요.
플라톤이 80세 즈음 세상을 떠난 반면, 고르기아스는 108세에 사망했어요.
진리의 옹호자가 먼저 가고, "진리는 없다"고 가르친 사람이 한참 뒤에 조용히 눈을 감은 거예요.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이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에 전해져요.
"잠이 더 강한 형제(죽음)에게 나를 넘기기 시작한다."
서두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작별 인사였어요.
한 평론가가 평생 혹독하게 비평한 작가가 그 평론가의 책을 읽으며 30년을 더 사는 것과 같아요.
고르기아스는 플라톤의 비판을 정면 반박하지 않았어요.
그저 더 오래 살았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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