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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62년, 파스칼이 39살로 죽었을 때 시종이 외투 안감에서 꿰매진 종이 두 장을 발견했어요.
양피지 한 장과 그것을 그대로 베껴 적은 종이 한 장이었는데, 1654년 11월 23일 밤에 겪은 신비체험을 직접 기록한 메모였어요.
오늘날 메모리얼(Memorial)이라 불리는 이 문서를, 파스칼은 죽기 8년 전부터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다시 꿰매서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
그냥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다면 특별할 게 없어요.
그런데 파스칼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합리주의 과학자 중 한 명이에요.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백 년 된 상식을 직접 실험으로 뒤집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부적처럼 종이를 꿰매고 살았다면, 뭔가 이야기가 있는 거겠죠.

파스칼이 세계 최초의 계산기를 만든 이유는 수학적 야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야근을 줄이기 위해서였어요.
1642년, 파스칼의 아버지 에티엔은 루앙(프랑스 북부 항구도시)의 세금 징수 책임자로 매일 밤 수백 개의 숫자를 손으로 더하고 있었어요.
19살의 파스칼은 이걸 보다 못해 기계를 만들기로 해요.
톱니바퀴와 다이얼이 맞물려 덧셈과 뺄셈을 자동으로 굴려주는 장치였고, 이것이 파스칼린(Pascaline)이에요.
50대 정도를 직접 만들었지만 제작비가 너무 비싸 팔리지 않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아빠 야근 줄이려고 앱을 개발했다가 서버비 때문에 망한 스타트업 같은 이야기예요.
하지만 이 이름이 수백 년 뒤 되살아났어요.
1970년대에 등장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파스칼(Pascal)이 바로 이 파스칼에서 이름을 따온 거예요.
아버지 회계 야근을 줄이려고 만든 효도 기계가, 결국 현대 프로그래밍 역사의 한 줄을 차지하게 됐어요.

확률론은 수학자의 서재에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1654년, 슈발리에 드 메레라는 직업 도박사가 파스칼에게 문제를 들고 왔어요.
"두 사람이 게임을 중간에 멈추면 판돈을 어떻게 나눠야 공평한가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질문이에요.
내기 바둑을 두다가 4:3으로 이기던 중에 갑자기 불이 났는데, 판돈 100만 원을 어떻게 나눠야 하냐는 거예요.
단순해 보이지만, 당시엔 아무도 수학적으로 답하지 못하던 문제였어요.
파스칼은 수학자 페르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 문제를 풀어냈어요.
그 편지들이 오늘날 확률론의 출발점으로 기록돼 있어요.
확률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가 원래는 도박 판돈 분배 다툼에서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같은 해에 파스칼은 훨씬 기묘한 아이디어도 구상해요.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라는 논리인데,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쪽이 기대값 면에서 더 합리적이다"는 주장이에요.
기대값이란 각 결과의 이득에 확률을 곱해 더한 수치로, 도박에서 어느 쪽에 베팅하는 게 유리한지 따질 때 쓰는 도구예요.
논리를 풀면 이렇게 돼요.
"신이 없다고 믿다가 있으면 영원한 벌을 받아요. 신이 있다고 믿다가 없으면 잃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믿는 쪽에 베팅하는 게 이득이잖아요."
도박꾼의 셈법으로 신앙을 설명한 사람이, 바로 같은 해에 확률론을 만든 파스칼이에요.

1654년의 '불의 밤' 이후 파스칼은 수학을 사실상 그만둬요.
합리주의 과학자가 계산이 닿지 않는 영역 앞에서 멈춘 거예요.
이후 그는 포르루아얄(Port-Royal)에 자주 드나들어요.
파리 근교에 있던 수도원으로, 당시 얀센주의(Jansenism)의 중심지였어요.
얀센주의는 인간의 자유 의지보다 신의 은혜가 먼저라고 강조하는 기독교 내 사상으로, 당시 가톨릭 교회 주류와 충돌을 빚고 있었어요.
파스칼은 그곳에서 거대한 기독교 변증서를 쓰겠다는 계획을 세워요.
변증서란 신앙을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글이에요.
그런데 그는 체계적인 원고 대신, 수년간 작은 종잇조각에 단편적인 메모만 남겼어요.
결국 1662년, 39살의 파스칼은 결핵과 위장병으로 죽어요.
책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사후에 가족과 동료들이 그 종잇조각들을 묶어 《팡세(Pensées)》로 펴냈어요.
팡세는 프랑스어로 '생각들'이라는 뜻이에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이 문장이 그 종잇조각 중 하나에 적혀 있었어요.
완성되지 않은 메모가, 수백 년간 인류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문장을 품고 있었어요.
계산기를 발명하고 확률론을 만든 수학자가, 마지막에 남긴 건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이었어요.
어쩌면 파스칼은 계산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났고, 그 무언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죽는 날까지 답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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