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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509년 여름, 한 사제가 친구 집 침대에서 농담처럼 쓴 책이 르네상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어요.
에라스무스는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알프스를 넘다 몸져누웠어요.
런던 근교 첼시에 사는 친구 토마스 모어 집에 몸을 뉘었고, 침대에서 할 일이 없으니 장난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일주일 만에 완성한 그 책이 바로 『광기예찬』이에요.
제목 자체가 말장난이에요.
그리스어로 '어리석음'은 '모리아(Moria)'인데, 친구 이름 모어(More)와 발음이 겹치거든요.
어리석음의 여신이 직접 나서서 "어리석은 게 뭐가 나빠요?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저예요"라고 떠드는 형식이에요.
그런데 이 책에서 어리석음의 여신이 가장 신나게 조롱하는 대상이 교황이고 수도사이고 신학자예요.
쓴 사람이 가톨릭 사제인데 가톨릭 성직자들을 대놓고 비웃은 거예요.
에라스무스 생전에만 36판이 찍혔고, 르네상스 최대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친구 집에서 심심풀이로 만든 풍자 영상이 갑자기 1천만 뷰를 찍어 평생 따라다니는 격이에요.
에라스무스는 이 책 하나로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렸고, 그게 이후 그의 삶을 내내 따라다녔어요.
루터의 독일어 성서는 에라스무스의 책상 위에서 시작됐어요.
1516년, 에라스무스는 『노붐 인스트루멘툼』을 출간해요.
그리스어 원문과 새 라틴어 번역을 나란히 실은 신약성서인데, 여기서 에라스무스는 충격적인 걸 짚어내요.
천 년 동안 유럽 교회가 공식적으로 써온 라틴어 불가타 성서에 번역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증명해버린 거예요.
예를 들어 예수가 처음 설교에서 한 말, "회개하라"가 불가타에는 "고행하라"로 잘못 번역돼 있었어요.
이 한 단어 차이가 당시 가톨릭 면죄부 관행의 근거가 됐던 표현이에요.
에라스무스는 그냥 "원문이 다릅니다"라고 학자답게 지적했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1521년 마르틴 루터가 이단으로 찍혀 바르트부르크 성에 몸을 숨겼을 때, 그가 들고 간 책이 바로 에라스무스의 이 책이었어요.
루터는 이걸 바탕으로 11개월 만에 독일어 신약성서를 번역해 냈고, 그게 종교개혁의 결정타가 됐어요.
회사 매뉴얼에 오타가 있다고 점잖게 지적했더니, 그 회사가 두 동강 난 격이에요.
루터는 한때 에라스무스를 스승이라 불렀어요. 1525년, 두 사람은 평생의 적이 됐어요.
151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였을 때, 에라스무스는 침묵했어요.
루터의 비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원하는 건 교회를 깨부수는 게 아니라 안에서 조용히 고치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에라스무스는 결국 입을 열었어요.
1524년,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론』을 써요.
루터가 주장한 예정설, 즉 인간이 구원받을지 말지는 신이 이미 결정해뒀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책이에요.
인간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의지가 있다는 주장이었어요.
루터는 이듬해 『노예의지론』으로 맞받아쳤어요.
"에라스무스만이 핵심을 찌른다"면서도, 그 답변은 완전히 틀렸다고 했어요.
두 사람은 그 후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어요.
결과는 처참했어요.
가톨릭 측에서는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고 루터가 부화시켰다"며 에라스무스를 종교개혁의 공범으로 몰았고, 개신교 측은 "겁쟁이"라고 욕했어요.
종교개혁의 지적 토대를 쌓은 사람이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은 거예요.
에라스무스는 16세기에 가장 유명한 유럽인이었지만,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말하기 싫어했어요.
그의 시작부터가 이미 그랬어요.
1466년 무렵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가톨릭 사제의 사생아로 태어났고, 부모가 흑사병으로 일찍 죽었어요.
후견인은 재산을 빼돌리고 그를 수도원에 처넣었어요.
에라스무스는 평생 자기 출생을 부끄러워했어요.
본명조차 잘 밝히지 않았고, "에라스무스"라는 이름 자체도 그가 스스로 골라 쓴 것이에요.
그런데 그 수치심 가득한 출발점에서 16세기 유럽 최고의 지식인이 됐어요.
30대 이후 에라스무스는 파리, 옥스퍼드, 루뱅, 바젤을 떠돌았어요.
헨리 8세, 카를 5세, 교황 파울루스 3세가 모두 그를 자기 곁에 두려 했어요.
추기경 자리까지 제안이 들어왔지만, 에라스무스는 전부 거절했어요.
빅테크 전부가 임원직을 제안하는데 평생 프리랜서로만 일하며 어느 도시에도 1년 넘게 머무르지 않는 사람과 비슷해요.
그는 어떤 권력에도 기대지 않음으로써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으려 했어요.
1536년, 에라스무스는 바젤에서 객사했어요.
어느 나라 국민도 아니었고, 어느 교단의 편도 아니었어요.
가장 뜨거운 시대를 살면서 가장 많이 알았던 사람이 어느 편에도 끝내 서지 않은 것이 용기인지 비겁인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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